러시아가 도통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월 24일 무서운 기세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수도 점령에 실패한 후 군사작전 목표를 변경했다. 우크라이나 동부로 병력을 집중,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우크라이나군이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서방사회가 지원한 무기들의 공이 톡톡한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약 한 달 만에 전화통화를 가졌다. 푸틴은 마크롱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유럽연합(EU)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방사회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압박해 전쟁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그만 보내라고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 어렵지만, 러시아가 서방 무기들로 무장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방은 푸틴 보란 듯, 이날도 무기 지원책을 쏟아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화상연설을 하면서 3억 파운드(약 4750억 원)에 달하는 추가 군수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새 무기 지원 목록에는 전자전 장비와 대(對)포병 레이더 시스템, 위치정보시스템(GPS) 교란장비, 야시경 등 첨단 장비가 대거 포함됐다. 영국은 앞서 대공포 장착 장갑차와 대전차 미사일, 대공방어시스템도 제공했다. 총 군수 지원 규모만 5억 파운드에 달한다.
독일은 전쟁 개입 논란에도 무기 수출 금지 방침을 뒤집고 중무기 지원에 나섰다. 이날 우크라이나에 자주포2000 7대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탱크 킬러 생산 공장까지 방문해 독려에 나섰다. 이날 미국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을 생산하는 록히드마틴 공장을 방문하고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위한 330억 달러(약 42조 원)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재차 촉구했다.
서방이 공급하고 있는 이 같은 무기들은 수적으로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사용된 재블린은 미국산 휴대용 대전차 시스템이다. 두 개의 폭발물이 장착돼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다고 평가받는 러시아산 T-90 탱크를 관통한다. 사거리 2500미터로 목표물을 파괴하고 고도를 높일 경우 헬리콥터와 같은 저공 비행기도 격추할 수 있다.
재블린의 또 다른 장점은 사용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설정하고 30초 이내 발사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재장전 시간은 20초 미만이다.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 러시아의 탱크 공격을 막아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탱크 580대가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록히드마틴이 미국에서 제조한 재블린 가격은 발사 시스템과 미사일을 포함해 17만8000달러다. 교체 미사일 비용은 7만8000달러다. 러시아 탱크 한 대 비용이 400만 달러니까 비용 대비 효과가 엄청난 셈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최소 7000기의 재블린을 제공했다.
독일이 제공하는 자주포2000은 155mm 주포로 40km 이상 거리까지 쏠 수 있는 중화기이며, 통상 6대가 1개 포대다. 지상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화력을 함께 집중하는 경우 축구장 1개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무인 항공기의 활약도 대단하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흑해 스네이크아일랜드(즈미니섬) 인근에서 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무장 드론으로 러시아군 경비정 2척을 타격해 침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