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과 2022년의 1차 투표 결과가 동일한 후보자에 유사한 득표율을 보여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듯하나, 국제환경 및 프랑스 내부 목소리 등 여러 상황에서 차이가 있다. 2017년 1차 투표 결과 마크롱과 르펜 두 후보의 결선투표행은 프랑스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이변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사회당과 공화당, 두 거대 정당을 물리치고 신생 정당의 마크롱 후보가 승리를 이끈 것이다. 하지만 2022년 두 후보 간 경쟁 구도가 재현되며, 몇 가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첫째, 기존 거대 정당이 주류정당으로서의 입지를 잃게 되었다는 점이다. 좌파와 우파의 주류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은 선거비용 보전을 위한 5% 득표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특히 프랑스는 대선 직후 한 달여 만에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치러져 국정 운영의 방향성이 명백히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대선 승리가 총선 결과로 이어지면 이제 막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지지하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 집권 초기부터 힘을 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과반 의석을 달성하여, 대선 캠페인 당시 공약이었던 강력한 노동개혁을 이행할 수 있었다. 마크롱 정부가 국정과제의 핵심으로 개혁을 이끌었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현재까지도 좌파 이념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5년 전에도 2022년 현재도 결선투표 후보를 압축하여 배출하지 못한 좌파진영은 결선투표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표심을 행하고자 하는 캠페인(Ni Macron, ni Le Pen)을 펼치고 있다. 올해 선거에서는 급진좌파 진영인 장뤼크 멜랑숑(Jean-Luc Melenchon) 후보가 22%를 득하여 3위를 기록했으나, 투표의 응집이 없었던 결과로 결선투표행이 좌절되었다.
둘째, 유럽연합(EU)에 대한 지지 여부가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 극명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2017년 당시 친유럽주의자들은 크게 인기를 잃었다. 2010년 유럽재정위기 발발 이후 몇 년에 걸친 경기불황은 다수의 회원국에 유럽회의주의를 확산시켰다. 2016년 영국이 EU 탈퇴 여부 투표에서 탈퇴를 결정해 이른바 브렉시트가 선택되었고, 유럽회의주의가 확산된 대륙에서 각국이 그렉시트(그리스의 탈퇴), 폴렉시트(폴란드의 탈퇴)를 외치며 반유럽 정서를 이어갔다. 하지만 2022년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설적이게도 유럽을 다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쟁은 유럽 시민이 다시 한번 집단안보의 중요성을 되짚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더불어 EU의 한 지붕 아래서 연대하여 외부 위험을 막아내야 함을 일깨웠다. 핀란드, 스웨덴 등 EU 회원국이면서 NATO 미가입 상태의 중립국들까지 NATO 가입에 대해 신중한 고민을 하는 상황이다. 친유럽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에서 이번 선거를 ‘유럽에 대한 국민투표’라 칭하며, 유럽이 위기와 전쟁으로부터 프랑스를 보호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가 오랜 기간 EU 탈퇴를 주장하며 반유럽 성향을 나타내왔음을 강조하나, 르펜 측에서는 “누구도 유럽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상황을 비켜 가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2차 투표를 앞둔 18일 EU 부패방지국(OLAF)은 르펜이 유럽의회 의원이었던 시절 자금 횡령이 보고되었다며 이를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러한 사실이 결선투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르펜 측은 대선 홍보 팸플릿에 실렸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급하게 폐기하는 등 여러 자충수를 드러내고 있다.
소득세법 개정, 에너지 요금 상한, 물가안정, 연금수령 연령의 변화, 이민 문제에 대한 개혁 등 생활과 밀접한 사안에 민감했던 국내 정치가 유럽 및 안보에 관한 대외변수와 맞물리며 프랑스 나아가 유럽 전역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