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외환위기 당시 긴급구제식 채무 재조정 추진' 공약의 실현 방안으로 '배드뱅크'를 언급하면서 관련 제도가 급부상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분과별 업무보고에서 "소상공인진흥공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배드뱅크는 부실자산이나 채권을 사들여 이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은행이 소상공인 대출 등 부실채권을 배드뱅크에 매각하고 배드뱅크는 채무자 상황에 따라 채무를 재조정해 연착륙을 지원하게 된다. 정부가 코로나19 장기화를 빚으로 버틴 소상공인의 잠재부실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을 막기위한 취지다.
배드뱅크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에도 부실채권 정리에 활용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뒤 김대중 정부는 기업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설치해 부실채권 약 148조 원을 정리했다.
중소기업계 전문가들도 부채탕감과 조정, 폐업 및 재기 지원 강화, 통합 조정기구 운영 등 소상공인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소상공인 전용 배드뱅크 조성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전날 낸 보고서에서 “국내 소상공인은 코로나19로 경영 여건이 악화돼 이자비용 감당도 힘든 실정”이라며 “소상공인 부채가 증가한 것은 단순히 코로나 위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국내 소상공인의 경우 창업비용 상당 부분을 차입에 의존해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어 폐업할 경우 신용불량자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정환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폐업하는 소상공인의 경우 일시에 갚아야 할 부채가 작지 않다보니 사업이 부진해도 폐업하지 못한 채 대출로 연명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 있다"고 부연였다.
현재 폐업 소상공인의 채무 재조정을 지원하는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지원을 받더라도 소상공인 평균 대출 규모가 3억3000만 원 수준으로 원리금 부담은 월 최대 250만 원에 달한다. 소상공인의 55%가 50~60대 고령자인 점을 감안하면 폐업 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대출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배드뱅크를 비롯해 폐업 및 재기 지원, 통합 조정기구 운영 등 3가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배드뱅크를 조성한 뒤 소상공인 부실채권 인수와 채무 재조정을 통해 한계 소상공인의 폐업을 촉진하는 정책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펀드 조성과 최근 논의 중인 50조 원 규모의 손실보상금이 병행될 경우 광범위한 파급효과가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