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태리는 또래 여배우 중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매 작품 높은 흥행 타율과 호평을 기록해오며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19살 여고생으로 변신해 시청자들을 웃고 울렸다.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서다. 김태리는 올해 32세의 나이지만, 고교생 펜싱 선수 나희도 캐릭터를 통해 10대의 풋풋한 감성을 표현해내며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 6개월가량 펜싱 연습에 매진해 펜싱 경기 장면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그의 열연에 힘입어 드라마는 지난달 12일 6.4%의 시청률로 시작해 20일 10.7%까지 끌어올리며 그야말로 ‘스물다섯 스물하나’ 열풍을 일으켰다.
최근 이투데이와 만난 김태리는 “제가 드라마를 많이 안해봐서 흥행에 대한 기준치가 없다. 시청률 10%가 넘어도 ‘잘되고 있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며 “그래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무엇보다 스태프분들이 고생한 만큼 보답 받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드라마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김태리가 맡은 나희도는 드라마를 몰입하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펜싱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아니지만, 선망의 대상인 고유림(보나 분)을 바라보며 고군분투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김태리는 나희도와 만나게 된 순간을 떠올리며 감사함을 전했다.
“이때까지 연기하면서 좋은 캐릭터들을 만나서 큰 행운이에요. 타이밍이 좋았던 것도 있죠. 내가 원해도, 그들이 나를 원해도 못할 수가 있잖아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선택할 때에는 제 에너지가 넘쳐서 주체 못 할 때에요. 영화 ‘외계인’ 촬영을 끝내고 당장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마침 희도를 만나게 된 거죠. 이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김태리가 나희도 역에 캐스팅됐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30대의 김태리가 10대 캐릭터를 맡는 데다 극 중 4살 연상으로 등장하는 상대 배우 남주혁보다도 실제로 나이가 많았던 것. 그러나 김태리는 흠잡을 데 없는 연기로 우려를 깨끗이 지워냈다.
“희도의 반짝반짝 빛나는 순수함과 아이같은 모습은 서른둘이 된 제가 가진 부분이기도 해요. 그래서 뭘 억지로 만든다기 보다는 잘 쓰인 대본을 그대로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했죠. 희도는 충분히 그렇게 해도 되는 캐릭터고,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잖아요. 또 트레이드 마크인 반묶음 머리나 부스스하고 정돈되지 않은 모습들이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희도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죠.”
나희도는 방송사 스포츠기자 백이진(남주혁)과 로맨스를 그렸다. 자신을 끊임없이 응원해주는 백이진에게 설렘을 느끼는 과정을 풋풋한 감성으로 표현해 호평을 얻었다. “니가 어디에 있든, 니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등의 대사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명장면ㆍ명대사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김태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와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백이진(남주혁)에게 뜬금없이 ‘널 가져야겠어!’라고 외치는 장면이요. 정말 어려웠어요. 너무 바보 같은 거예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바보 같은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고 표현했을 때 희도가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거든요. 매력 포인트죠. 더 미친사람처럼 내뱉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기도 해요. 사랑을 만화책으로 배운 아이거든요. 그래서 이 대사를 가장 좋아하고, 희도 캐릭터를 잘 소개하는 라인인 것 같아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IMF 외환위기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져있던 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렸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청춘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며 추억했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치유하고, 응원받았다. 김태리 또한 지금 청춘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버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배웠어요. 이 드라마를 하면서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그래도 주어진 것을 하나씩 해가면서, 못하는 것은 내려놓으면서 버텼어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대한지 잘 알고 있어요. 정말 응원해요. 내려놓는 것을 창피해하지 마세요. 버티는 게 훨씬 위대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