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시도하는 인수위 "과제 정리 중…뵙는 게 나아"
대신 고개 숙이는 민주당 "정치인이 태만했다"
이준석 '언더도그마' 발언 지적도…"장애인 시혜대상 굳히면 안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향해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자 정치권 안팎에선 이 대표를 비판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대표는 전장연이 시민을 볼모 삼아 무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29일 오전 YTN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권력자를 향해 각성을 촉구하는 게 보통의 시위 방식이라며 "왜 3·4호선으로 출퇴근하는 서울 시민이 투쟁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볼모 삼아서 시위하지 말라는 표현은 관용적 표현인데 뭐가 문제냐"며 "결국 제가 한 말의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 보니까 어떻게 장애인에 대해 (볼모라고) 얘기할 수 있냐(고 말 하는데) 성역화죠"라고 주장했다.
같은날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지난 주말에 지하철 문에 휠체어를 세워놓고 열차 출발을 막는 방식이 지적을 많이 받더니 어제부터 전장연이 그냥 탑승만 하고 있다"며 "진작 이렇게 했다면 되었을 텐데 이제야 시위 방식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게 애초에 요구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 쏟아진 우려를 의식해 장애인 시위 자체가 아닌 방식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강도높은 비판을 이어가는 이 대표와 거리를 두려는 정치권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는 전장연과 만나 대화를 했다.
해당 분과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여러분의 절박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부분도 이해합니다만, 또 이로 인해 다른 시민들께서 불편을 겪고 계시니까"라며 "저희가 과제를 다 받아서 정의하는 과정에 있는데, 뵙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부처에서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며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단기·중기·장기적인 것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준석 대표가 공당의 대표인데 (전장연에) 좀 사과하시라고 전달하면 좋겠다"고 말하자 임 의원은 "그 말씀 전달해 올리겠다. 여러분의 절박한 마음을 알았으니 시민들께 폐를 끼치는 부분은 지양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당내에서도 공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전장연 시위 현장을 찾은 김예지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자신을 향한) 혐오의 감정과 짜증 섞인 표정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시위를 해야 했음을 누군가는 인정하고 들어주는 노력을 하는 게 정치 지도자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진 딸이 있는 나경원 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하철에 100%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위하는 것을 조롱하거나 '떼법'이라고 무조건 비난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전장연의 시위 태도도 문제지만, 폄훼·조롱도 정치의 성숙한 모습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민주당도 전장연과 간담회를 하고 장애인 차별 해소와 지원을 위한 제도개선 노력을 약속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를 향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직격하면서 대신 사과하기도 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장애인 분들이 불편한 몸으로 시위를 하시게 된 것은 모두 저희 정치인이 태만했기 때문"이라며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자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갈등만 부추기는 이들이 있다"며 "곧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 대표께서는 장애인 시위를 두고 '서울 시민을 볼모로 삼는 시위'라고 했는데 이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본질을 왜곡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대표의 소수자 인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이 대표는 "소수자 정치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성역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는 것에 있다"면서 '언더도그마'를 언급했다.
언더도그마란 약자는 무조건 선(善)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惡)하다고 판단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약자인 장애인이 시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선한 것은 아니란 주장이다.
인권운동가 출신인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이 대표는 '언더도그마' 논리로 장애인을 주체적인 시민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동전과 시혜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며 "그런 담론은 장애인을 정치권에 계속 소외시키고 고립시키는 문제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노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대구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촉구하는 시민운동 간사를 맡은 바 있다. 배 부대표는 최근 장애인단체 후원 움직임을 언급하면서 "이 대표의 '시민 볼모' 발언과 달리 다수의 시민들은 이번 계기로 연대를 생각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을 복지와 동정의 대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시설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민들도 이번 장애인 시위를 통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이 대표는 차기 여당 대표로서 혐오가 아니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