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ㆍ젠더 정치가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20대가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프레임 전쟁에 나섰다. 일명 '이대남'부터 ‘1번남·2번남’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갈등 당사자 간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국민통합'의 길로 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주말부터 20대가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전쟁터가 됐다. ‘이대남’으로 불리던 2030 남성들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1번남’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2번남’으로 가르는 밈(meme)이 생긴 것.
밈은 유전자가 복제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 전파되고 유행하는 콘텐츠다. 이 밈은 20·30대 남성 일부에 대한 비하와 조롱의 뜻을 담고 있다. 외모가 별로면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을 2번남으로 규정했다. 2번남 프레임이 던져지자 이용자들은 1번남인지, 2번남인지 자신과 상대의 정체성을 점검했다. 그러곤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상대를 공격했다. 여야 성향 커뮤니티들도 각 진영 안에서 후보별로 분화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전문가들은 각 선대위가 이 같은 현상을 정략적으로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030세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며 “이에 모든 대선 후보들이 청년세대에 구애하는 공약을 쏟아내기 급급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와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한 부분은 20·30대 남성 표심을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후보는 마지막 유세에서 청년들이 밀집한 홍대를 방문해 2030여성 표심을 집중 공략했다.
문제는 2030 유권자 다수가 특정한 정치성향을 분명히 함에 따라 정치권이 프레임 경쟁을 한게 아니라는 점이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사회학 특임교수는 “프레임 전쟁은 어느 세대에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대를 특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청년세대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각자 가진 당근을 다 던져보는 것”이라며 “청년층이 하나의 정치세대를 이루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유동하는 청년들을 각기 자기편 정치세대로 만들려고 작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20대가 정치적 프레임에 이용 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를 이용하는 등 주체적 세대라는 견해를 내놨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청년세대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본인들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합의된 가치와 철학으로 언어와 행동을 실행하는 주체적 세대"라며 "본인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합리적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이대남, 1번남2번남 역시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활동하기 편한 공간에서 집단 가치를 공유하고 활동하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것"이라며 "외부의 시각에서 규정된 것이 아닌 스스로를 규정짓는 양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팬덤’ 정치가 토론의 장이 아닌 극단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팬덤 특성은 극단화에 있다”며 “‘젠더 등 세대 '갈라치기' 전략은 바람직한 정치 전략이 아니다. 선거에서는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몰라도 성 평등과 민주주의를 결국 저해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치영역의 프레임전이 지속될수록 사회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책임연구원은 "프레임 정치의 문제는 갈등이다. 갈등에서 촉발된 사회적 비용과 감정 소모를 줄여야 하는 것이 정치권의 역할"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정치권은 세대 혹은 젠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갈등 당사자들은 서로 간의 가치와 철학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사회적 합의와 정치권 노력이 있어야 서로의 상처가 치유되고 국민통합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