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이 중소기업ㆍ개인사업자를 상대로 한 기업대출 시장에 본격 진출할 채비를 하면서 기존 은행권 역시 긴장하고 있다.
'디지털 금융' 확대와 가계부채 관리 강화에 힘입어 단기간에 가계대출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인터넷전문은행이 가계금융에서도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위원회의 예대율 규제 개편에 따라 기업대출을 준비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당국에 기업대출 진출을 위한 규제 개선을 건의했고 꾸준히 기업대출 시장 진출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업대출에 대한 실전 경험이 부족한 만큼 개인 사업자 대출부터 확대할 전망이다. 소호 대출부터 시작해 신용등급 평가, 대출 자산 관리 등의 노하우가 쌓이면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으로 대출 대상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에 제약이 있는 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을 확대하려는 기존 은행권은 인터넷전문은행의 기업대출 진출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가계대출 시장에서 이미 인터넷전문은행이 무서운 속도로 사세를 확장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대출 시장에서 전통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의 '나눠먹기식 경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호 대출로 시작한 뒤 중장기적으로 중소법인대출로 확대할 것 같다"며 "개인대출 같은 경우도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갔는데 기업대출이 다르다는 보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에 은행들이 쌓았던 기업대출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 당장 이 시장에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 기반의 기업대출을 활발히 하는 지방은행 역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물리적 거리의 제약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업대출을 본격화할 경우 타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인터넷전문은행이 향후 기존 은행과 동일한 예대율 규제를 적용받더라도 3년의 유예기간 동안 기업대출을 늘린다면 예금 확대 등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준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결국, 기업대출 확대가 기존 은행과의 격차를 좁힐 기회란 주장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제대로 기업대출을 확대한다면 개인사업자ㆍ중소기업은 대출 선택의 폭을 늘릴 수 있고 더 나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업대출 시장에서 '메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가계대출 시장에서도 은행업계의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중심 비대면거래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다르게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번 금융위의 결정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과도한 혜택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본래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 목적이었던 중ㆍ저신용자대출 실적이 미진한데도 지속해서 당근만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 대출을 대면으로 허용하게 되면 인터넷전문은행과 은행이 다를 게 없다"라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도 이번 규제 완화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메기 역할을 하기보다, 오히려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대출금리를 더 받아가는 중"이라며 "굳이 규제를 풀어줄 이유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5월 금융당국은 인터넷 전문은행이 중ㆍ저신용층 대출 비중 확대를 주문하기도 했다. 대출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애초 설립 취지와 달리 고신용층 위주의 보수적인 대출 영업을 한다는 비판이 커져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며 대처에 나섰지만, 성과는 여전히 미진한 상태다. 카카오뱅크는 20.8%, 케이뱅크는 21.5%, 토스뱅크는 34.9%의 중ㆍ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 목표치로 설정, 지난해 말까지 맞춰나가겠다 밝힌 바 있다. 단계적으로 비중을 확대해 2023년 말 30%를 상회하는 것이 목표였다.
은행연합회에 공시한 '중ㆍ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잔액 기준)'을 살펴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중ㆍ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은 13.4%에 불과했다.
금융위의 이번 조치가 법률의 위임 범위를 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연 중소기업에 대한 대면 대출이 ‘전자금융거래가 곤란하거나 소비자 보호 및 편의 증진’이라는 예외적 사유에 해당하나”라고 반문하며 “정권 말기에 인뱅에 소원 수리해 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