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과감한 ‘매도’ 리포트를 바란다

입력 2021-1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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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헌 자본시장부 차장

국내 증시는 지난해 불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완전히 체질이 개선됐다고 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시장의 아웃사이더였던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를 움직이는 주요 세력으로 떠올랐고 이들은 해외 주식에도 진출하며 ‘서학개미’라는 신조어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시총상위 종목들도 1년 새 전면 개편되며 달라진 산업군의 위상을 반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증시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증권사들이 내놓는 종목 리포트다. 십수 년 전부터 지적된 문제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매수’ 리포트는 많지만 ‘팔라’(매도)는 의견을 담은 리포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서 내놓는 ‘증권사별 리포트 투자등급 비율’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올해 3분기 말 기준 최근 1년 사이 종목 리포트를 내놓은 증권사 49곳 중 매도리포트 비율이 0%인 증권사는 27곳에 달했다. 비율로는 55%를 넘는다. 매도 리포트 비율이 높은 증권사 상위권에는 외국계 증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노무라, 다이와증권 등은 매도 리포트의 비율이 10%를 넘었다.

이 같은 지적은 사실 하루이틀 된 문제는 아니다.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증권사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상장사들의 태도다.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낼 경우 해당 연구원은 기업 탐방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의 자료가 끊기는 경우가 다만사라는 것이다. 이 경우 다음부터는 자료도 없이 리포트를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와의 관계도 매도 리포트를 막는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종목 리포트를 내놓는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주 업무 중 하나는 법인 영업인데, 만약 증권사들이 매도 리포트를 낼 경우 주가가 떨어지면 이들과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 표출도 연구원들의 몸을 사리게 하는 요소다. 특정 기업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내용을 리포트에 담을 경우 리서치센터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개인 투자자들의 입지가 커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물론 최근 들어 증권업계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삼성전자나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자 목표주가를 적극적으로 내리고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나 ‘중립’으로 바꾸는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매수 일변도의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증권사들이 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리포트 유료화 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이 같은 비난을 감수하는 성장통도 필요하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연구원들과 증권사가 자발적으로 소신 발언을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한두 건의 소신 리포트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진통도 없이 원하는 바를 이룰 리 없다.

금융당국의 노력도 요구된다. 연구원들의 보고서에 따라 매매가 이뤄질 경우 그에 따른 보상이 직접 주어지는 등 강력한 유인책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투자자들 역시 리포트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성숙한 투자문화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노력들을 통해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오고 건전한 투자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ar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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