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가상과 현실 세계의 접점을 찾아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메타버스’를 침투시키고 있다. 정보·기술(IT)부터 게임, 유통, 음악, 가상자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 시대’ 다음은 ‘메타버스 시대’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로블록스 등 IT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포스트 인터넷’으로 삼고 신사업을 모색 중이다. 페이스북은 8월 오큘러스 VR 헤드셋에 활용되는 무료 앱인 ‘호라이즌 워크룸’에 대한 공개 테스트에 들어갔다. 호라이즌 워크룸은 최대 15명의 동료와 가상 공간에서 대화하고 실제 사무실처럼 화이트보드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미래엔 메타버스가 함께 일하는 주된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라며 “메타버스는 우리가 속해 있거나, 또는 속해 있을 수 있는 인터넷”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 회사로 생각하지만, 5년 후엔 우리를 메타버스 회사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로블록스는 최근 수천 명의 사람을 콘서트나 학교, 또는 회사 회의에 동시에 참석할 수 있게 하는 메타버스 환경을 계획하고 있다. 데이브 바추스키 로블록스 CEO는 “메타버스는 6세 아동을 환영하는 동시에 30세 동료도 받아주는 시민적이고 안전한 플랫폼이어야 한다”며 “이 같은 경험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인력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IT 기업들은 단순히 메타버스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메타버스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서 가상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이버 안전 문제도 살피고 있다.
아고라와 판도라, 라이엇게임즈와 로블록스 등 주요 회사들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8월 출범한 오아시스 컨소시엄은 페이스북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이 메타버스 사업에 합류한 후 사용자 안전에 대한 표준 마련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개방성과 책임성, 보안, 혁신, 지속가능성 등 세부 사항을 토대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메타버스는 IT업계의 전유물? 가구·패션 업계도 군침
IT 기업만 메타버스 사업에 공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엔 디자인과 패션 업계에서도 메타버스 활용 빈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초 아르헨티나 디자이너 안드레스 레이싱어는 NFT(대체불가능한토큰) 온라인 경매에서 10개의 가상 가구를 판매했다. 가장 비싸게 팔린 품목은 7만 달러(약 8247만 원)에 거래됐다. 레이싱어는 인스타그램에 초현실적인 가구 디자인을 공유하면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가 판매한 가구들은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다. 대신 메타버스 공간에서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배치할 수 있다. 이젠 메타버스에서 자신의 집과 공간을 보유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거래도 이뤄지는 것이다.
8월엔 의류 브랜드 랄프로렌이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메타버스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협약을 통해 뉴욕 랄프로렌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한 여러 특정 장소가 제페토 현실에 반영된다. 9월엔 K팝 아이돌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랄프로렌 가상 매장에서 라이브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메타버스 세상에 매장을 들이고, 유명 뮤지션을 섭외해 행사를 여는 모습은 패션업계에 신선함을 안겼다.
반스 역시 메타버스에 동참했다. 9월 반스는 로블록스와 함께 ‘반스월드’라는 스케이트 파크를 출시했다. 활동적인 스포츠 브랜드를 표방하는 반스는 신발과 스케이트 보드 등을 제공해 사용자들이 메타버스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도록 했다.
반스의 닉 스트리트 부사장은 “스케이트 문화에 깊이 박혀 있는 반스는 50년 넘게 이러한 창의성을 지원해 왔다”며 “반스월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가상과 실제 세계의 패션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디지털 세계에서 창의적인 표현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타버스와 NFT, 가상자산 시장으로까지 확대
해외에선 메타버스와 NFT를 연동해 거래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러시아 국립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9월 주요 소장품들을 NFT 기반의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상품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돈나 리타’를 비롯해 바실리 칸딘스키의 ‘구성 6’, 빈센트 반 고흐의 ‘라일락 부시’ 등이 활용됐다. 이를 통해 미술관 측은 40만 달러 이상의 이익을 거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NFT 거래가 기존 가상자산 시장으로의 투자자 유입을 늘릴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NFT 거래 활성화가 가상자산의 붐으로 이어져 블록체인에 대한 신뢰를 높이길 바라고 있다.
다만 아직 NFT 상품의 지적재산권 인정과 도난 및 사기, 가격 덤핑 문제 등이 해결 과제로 남아 있어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FT는 “NFT 붐은 밈에 의해 주도되는 광란의 투기를 넘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의 영토 확보 차원”이라고 평했다. 이어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려면 모든 것이 기록될 수 있는 블록체인이 있어야 한다”며 “네트워크 효과 측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블록체인은 이더리움”이라고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