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협력사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위해 자회사 3곳을 설립했지만, 내부적인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2600여 명이 자회사 입사를 거부하고, 본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노ㆍ노 갈등으로 제 2의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가 벌어질 조짐마저 보인다.
현대제철은 1일 △현대ITC(당진) △현대ISC(인천) △현대IMC(포항) 등 3개 자회사를 공식 출범시켰다. 자회사 설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바로잡으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고용노동부의 불법 파견 시정 명령을 수용하려는 조치다.
이날 출범한 자회사는 당진, 인천, 포항 사업장의 협력사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전체 협력사 직원 7000여 명 가운데 약 4500명(약 64%)이 입사에 응했다. 이들 대부분은 기존에 일하던 곳에서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 수행한다. 계열사 조직개편으로 불가피하게 업무 조정이 필요한 경우 사전에 희망 직무를 파악해 인사에 반영했다.
자회사 소속 직원은 기존보다 향상된 임금과 복지를 누린다. 현대제철 본사 정규직의 60% 수준이던 임금은 80%까지 올랐고, 차량 구매와 의료비, 학자금 등 복지혜택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수준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에 소속된 조합원 2600여 명은 여전히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채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협력업체에 소속된 ‘정규직’ 직원이지만, 현대제철 본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되길 원한다. 비정규직 노조는 “하청 노동자를 자회사에 고용하는 건 꼼수다. 불법파견 처벌을 피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난색을 보인다. 정부의 시정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자회사까지 설립한 상황에서 이들을 본사 정규직으로 고용할 이유가 없어서다. 현대제철 본사에 소속된 직원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현대제철 측은 “제조업 최초로 자회사를 만들어 대폭 상향된 근로조건으로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라 누가 봐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라며 비정규직 지회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회사를 통한 고용은 법적으로도 문제 될 게 없다. 재계 관계자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협력업체 근로자를 직접 채용하는 방식은 고용부가 인정한 전환 방식"이라며 “모기업 형태로 된 회사가 100% 내지는 일부를 출자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모자간 관계에서 영업과 사업을 완전히 분리해 다른 회사로 운영한다면 법리적으로 불법파견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온 인국공 사태가 현대제철에서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인국공 사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일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힌 뒤 본사 정규직과 극심한 갈등을 겪은 일이다.
이미 비정규직지회와 자회사 채용에 응한 협력사 직원, 현대제철 정규직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조짐도 보인다. 현대제철에 소속된 한 정규직은 “그들은 엄연히 협력업체에서 ‘정규직’으로 근무 중이지만, 노조 이름을 ‘비정규직지회’로 설정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로 생각 들게끔 하고 있다”라며 “입사를 위한 직원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인국공 사태와 다름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지금도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무단 점거하고, 방역수칙을 어기며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비정규직 지회 소속 조합원 100여 명은 지난달 23일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한 뒤 현재까지 농성을 지속 중이다. 민주노총은 당진제철소 주변에서 지난달 25일에 이어 31일에도 1000여 명이 모이는 집회를 벌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가 선포된 당진시에서는 50명 넘게 참여하는 집회가 불법이다. 이들은 방역 당국의 고발과 경찰 해산 명령을 무시한 채 1시간가량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이날 기동대 4개 중대(약 300명)를 농성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시위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 다만, 방역 수칙을 위반하고 미신고 집회를 개최한 주최 측을 수사할 계획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