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빌라 웃돈 선분양'… 사업 지연땐 '리스크 덤터기'
노후 주거지 재개발 기대가 커지면서 서울에서 빌라(연립·다세대주택)가 귀해지고 있다. 첫 삽도 안 뜬 신축 빌라를 설계도만 보고 분양받는 입도선매(立稻先賣·벼가 서자마자 사는 것처럼 완제품이 나오기 전에 매수하는 행위)까지 성행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3억463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2억6218만 원)보다 32.1% 상승했다. 매매량도 연립·다세대주택(4572건)이 아파트(4362건)를 웃돈다.
부동산시장에선 빌라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을 두 가지로 본다. 우선 실수요다. 아파트값이 꺾일 줄 모르면서 아파트 입주를 단념한 이들이 빌라로 눈을 돌리면서 수요가 커졌다.
여기에 투자·투기 수요까지 가세했다. 그간 재개발이 어려웠던 노후 주거지를 한국토지공사(LH) 등 공공이 나서서 개발하겠다고 정부가 밝히면서 빌라 매수세에 불을 지폈다. 공공 재개발 예정지에 빌라를 사두면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어서다. 지난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재개발 규제 완화를 공약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간 재개발 기대감까지 커지고 있다.
재개발 추진 움직임이 이는 지역마다 빌라 가격이 오르는 배경이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1가 H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재개발 기대감 때문에 빌라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그나마 나온 물건 시세도 신축 빌라는 대지지분 3.3㎡당 1억2000만 원, 구축은 1억 원 정도 한다"고 말했다. 2018년 3억4000만 원에 거래됐던 대지지분 17.8㎡짜리 원효로2가 D빌라는 지금은 6억5000만 원을 호가한다.
건축주들은 호기를 놓치지 않고 있다. 재개발 추진 지역마다 빌라를 새로 지어 분양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에서 건축 허가를 받은 연립·다세대주택은 1380동이다. 지난해 상반기(1062동)보다 29.9% 늘었다.
재개발 추진 지역에선 선분양(공사를 마무리하기 전에 분양하는 것) 빌라도 늘고 있다. 공사 초기 단계나 심지어는 건축 허가를 받은 직후 입주자를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싸게 책정되는 아파트와 달리 재개발 추진 지역 신축 빌라는 시세와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에 분양되고 있다.
선분양을 하면 건축주로선 이자 부담이 줄어 좋지만 수분양자(분양을 받은 사람)는 공사가 지연되거나 지체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영세 건축주가 많은 빌라시장에서 그간 후분양(공정이 80% 이상 진전된 후 분양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이유다.
늘어나는 선분양은 빌라시장이 공급자 우위시장으로 재편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광정 용산일등부동산 대표는 "최근 재개발 지역에서 나오는 빌라는 대부분 선분양 방식으로 공급된다고 보면 된다"며 "투자자들이 도면만 보고 물건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뜨거워지는 빌라 분양시장에 비해 안전장치는 빈약하다. 건축주가 분양 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공사를 완수하거나 분양비를 환급해주는 분양보증제도가 작동하고 있지만 30가구 이상인 주택만 제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소규모 선분양 빌라 수분양자는 주택 경기 변동이나 개발사업 진척 여부에 따른 사업 리스크를 건축주 대신 떠안아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아파트 대체재로 신축 빌라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선분양 사례도 늘고 있다"며 "신축 빌라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노후도 미달로 재개발이 어려워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