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두 총수의 자존심 대결에 불이 붙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얘기다.
롯데와 신세계는 오랜 세월 사업 영역이 겹치다 보니 신 회장과 정 부회장은 경영 1인자에 오른 이후 끊임 없이 경쟁을 이어왔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전통 유통 사업에 더해 복합쇼핑몰과 호텔, 최근엔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맞붙고 있다.
두 사람의 대결 구도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상반된 캐릭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개인 SNS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하고 언론 등 외부 노출을 꺼리지 않는 '외향형' 정 부회장과 말을 아끼며 외부 활동이 많지 않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내향형' 신 회장의 경영 대결은 그 자체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는 평가다.
특히 올해 대결의 긴장감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코로나19로 소비 주도권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넘어가는 가운데 올해가 전통 유통업체의 생사를 가를 절체절명의 해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대결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경영 일선에 뛰어든 건 신 회장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을 보필하며 경영 수업에 매진하던 그는 2004년 그룹 정책본부장에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섰다.
롯데홈쇼핑(전 우리홈쇼핑), 롯데주류(전 두산주류), 하이마트 등 잇단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하고 롯데쇼핑을 상장시켰으며 해외 진출을 통해 롯데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데 앞장섰다. 2011년 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1인자가 됐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정 부회장도 비슷한 시기인 2010년 신세계 대표이사가 되며 유통가 영원한 맞수의 2세 전쟁은 본격화했다. 취임 후 정 부회장은 특유의 현장 경영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백화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스타필드), 호텔, 이커머스(SSG닷컴) 등 전 사업 영역에서 성장을 이뤘다.
연초부터 기선제압에 성공한 건 정 부회장이다. 그는 연초 SK그룹으로부터 야구단을 깜짝 인수하며 오프라인 유통채널에 '야구장'을 추가했다. 야구단 인수 과정에선 '상대 팀의 모기업에 대한 언급은 피한다'는 업계 불문율을 깨고 "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며 롯데그룹을 보란듯이 '저격'했다.
정 부회장의 연초 행보는 야구 마케팅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네이버를 찾아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CIO)를 만나 지분 맞교환을 성사시키며 신세계-네이버 '혈맹'을 이끌어 냈다. 이어 SSG닷컴을 통해 온라인 여성 패션몰 W컨셉을 2000억 원대에 인수했고, 이커머스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5조 원 규모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도 뛰어든 상태다.
반면 사업의 양대축인 유통과 화학이 모두 흔들리는 데다 "미래 먹거리조차 딱히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신동빈 회장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반격을 준비중이다. 한국과 일본간 '셔틀 경영'을 이어가는 신 회장은 최근 한국에 복귀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은 이커머스 재편이다. 롯데가 그룹 통합 온라인몰을 외치며 지난해 4월 선보인 롯데온은 출시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쇼핑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커머스 사업부문은 지난해 94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신 회장은 최근 인사를 통해 분위기 쇄신에 주력하고 있다. 이커머스 사업부장을 경질하고 이 자리에 이베이코리아 전략사업본부장 출신인 나영호 부사장을 앉혔다. 업계는 '롯데맨'이 아닌 외부 전문가 영입을 통해 이커머스 사업부에 새로운 조직 문화를 도입해 체질을 바꾸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신 회장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 가격이 5조 원을 넘나드는 만큼 오너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 회장의 오른팔로 유통사업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는 지난달 주총에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충분히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미래 새 먹거리 발굴에도 전에 없이 힘을 싣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 인수에 참여하는가 하면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이오 산업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