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스크가 있어도 쓸 수 없었던 나라, 미국

입력 2021-04-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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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국제경제부 기자

지난해 5월의 일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는 동생은 한국에서 어렵사리 공수한 마스크가 있었지만 쓸 수 없었다.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당시 아시아인이 마스크를 쓴 채로 돌아다니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 아니냐”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을 해댄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목놓아 외치던 때였다.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차별과 냉대가 더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USA투데이와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1명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아시아인 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사실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다. 10년 전 교환학생으로 직접 겪었던 미국은 사회적으로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막연한 성적 환상이 있었고, ‘그린카드(영주권)’를 위해 백인 남성과의 결혼을 갈망할 것이라는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편견이 강했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미국은 변함없어 보인다. 지난달 16일 한국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인 8명이 사망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적 정서를 여실히 보여줬다. 사건 발생 직후 현지 경찰은 범행 동기와 관련해 증오범죄가 아닌 ‘성중독’ 가능성부터 거론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지만, 증오범죄로 분류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어 노래로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전 세계에서 호평받는 시대가 왔지만, 미국의 이면에는 여전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국에 사는 친척이나 사돈 하나쯤 있고, 높은 학구열 덕에 미국 유학생도 많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를 단순히 타국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가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에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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