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31일(현지시각)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특허침해 소송에서 SK 측 손을 들어줬다. 반면, 양사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는 SK가 LG 측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면서 수입 금지 10년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번 판단이 ITC 결정에 대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좌우할지,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ITC는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SK가 관련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 측이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관련 특허 4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앞선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는 "SK는 침해한 LG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해당 정보를 10년 안에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침해 기술을 10년 이내에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SK 측은 이번 특허침해 소송 결정을 환영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을 내고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남은 소송 절차에 따라 특허 침해를 인정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SK 측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 분위기가 반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특허로 지정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 영업비밀"이라며 "영업비밀보다도 중요한 특허 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SK가 억울하다는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는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한 채 결정됐다"며 "그렇게 파울 패를 당했는데 이번 특허 소송으로 분위기가 반전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다만, LG 측과 영업비밀 침해에 관한 합의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2조~3조 원 수준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1조 원 안팎을 제시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관건은 대통령 거부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11일까지 'SK 수입 금지'를 결정한 ITC 판단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특허침해 결정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SK 측은 대통령 거부권을 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와 LG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 결정 이후 미국 내에서 대통령 거부권을 둘러싼 신경전을 이어왔다. SK가 ITC 결정으로 철수하면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 주에 투자할 것이라고 하자 SK이노베이션이 '실체 없는 투자'라며 날을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ITC 결정이 조지아 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거부권을 끌어내기 위해 압박 수위를 한 층 더 높인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법무부 차관을 지낸 샐리 예이츠 전 차관도 영입했다. 최근에는 로비회사 '캐피톨시티그룹'을 고용하며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캐피톨시티그룹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측과 관계가 깊고 미국 민주당 상ㆍ하원 의원들과도 연이 닿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관련한 언급을 자제하는 중이다. 거부권 행사는 미 행정부에서 결정할 사안인 만큼 예측을 내놓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SK이노베이션을 향해서는 강경한 모습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2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피해 규모에 합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와 관련된 사안은 영업비밀 문제"라며 "(ITC는) 포드와 폭스바겐에 SK이노베이션 수입 금지를 각각 4년ㆍ2년씩 유예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거부권이 나올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