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 확산으로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동시에 '수장 공석'이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양대 기관이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14일 정관계에 따르면 2·4 공급 대책의 핵심 내용을 추진하기 위한 후속 법안은 아직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애초 당정은 이달 중 후속 법안을 통과시키고 시행령 개정 등의 준비를 거쳐 6월 전까지 대책을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LH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땅 투기 사태가 일파만파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여야가 합의해 후속 입법을 서두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이번 땅 투기 의혹으로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어서 LH가 주도하는 개발 방식을 설득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여기에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2·4 대책의 추진 동력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LH 사장에서 국토부 수장으로 취임한 변 장관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집값을 확실하게 잡겠다며 2·4 대책을 자신 있게 내놓았다.
그러나 LH 사장 재임 당시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 전에 토지를 집중 매입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2·4 대책의 후속 입법 기초작업까지만 수행하고 물러나는 ‘시한부 장관’이 됐다. 변 장관이 국토부로 자리를 옮긴 이후 공석인 LH 사장 자리 역시 적임자를 찾지 못해 비어있는 상태다.
LH 사장 임명 절차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LH 임원추천위원회 추천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심의, 국토부 임명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게 된다. 국토부는 기존 후보자 중 현재 상황에 엄중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재추천을 추진하는 중이다.
LH의 땅 투기 사태를 수습할 신임 수장의 임명 절차가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조직을 재정비할 리더십의 공백은 한동안 더 이어지게 됐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양대 기관이 모두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급등하는 집값을 잡을 회심의 카드로 꺼내든 변 장관표 2·4 대책도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2·4대책의 핵심은 LH 등 공공이 직접 나서 용적률 상향과 사업기간 단축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도심에 대규모 주택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다.
변 장관은 2·4대책을 통해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 전국 83만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변 장관이 시한부 장관이 되면서 주택 공급 대책을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계속 강하게 밀어붙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다. 3기 신도시를 비롯한 전국 공공주택지구의 토지주와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한층 더 거센 난항이 예상된다.
임채관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 의장은 “신도시 원주민에 대해선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LH 직원들은 사전에 개발정보를 빼돌려 땅 투기를 했다”라며 “3기 신도시는 백지화하고 현재 진행 중인 신도시 수용·보상 절차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2·4 대책 이후 주택시장이 안정세를 되찾는 듯했는데 뜻밖의 악재가 나와 안타깝다”면서도 “LH 사태로 정책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지만 공급 대책은 예정대로 해 추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