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주주자본주의의 가능성?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입력 2021-03-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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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제목만 보면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의 한바탕 코믹 소동극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영화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담아냈다. 직장 내 성차별과 학력 차별로 인한 설움이 기폭제가 되어 이야기는 시작되고,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악의적 해외 투기자본의 등장으로 위기의 고점을 찍는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을 눈치챌 수 있는 소품을 추억 돋게 배치하고 톡톡 튀는 캐릭터를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자칫 무거운 담론에 짓눌리거나 주제의식 과잉으로 빠지지 않게 영리한 연출을 구사한다.

입사 8년 차인 베테랑 말단사원인 세 친구가 대리 진급을 목표로 회사 토익반에 들고, 우연히 알게 된 회사의 엄청난 비리를 함께 파헤친다. 스토리만 봐서는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연상시키지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여기서 한걸음 더 들어간다. 내부 고발자의 투쟁과 기업의 환경범죄 고발을 넘어 우리 사회에 이제야 형체를 띠며 나타난 ‘주주자본주의’의 가치와 중요성까지 은근슬쩍 일깨워 준다.

제목에 삼진그룹이 있어 불필요한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영화의 첫머리에 특정 회사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음을 못 박아 소모적 논쟁을 막았다. 하지만 영화의 도입부 사건은 분명 실제 일어난 일이다. 1991년 경상북도 구미의 한 공장 생산라인에서 파이프가 파열돼 대구 상수원 취수장으로 페놀이 흘러들어 수돗물을 오염시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결국 기업 회장이 물러나고 주무장관은 경질되었다. 이종필 감독은 당시 실제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3인의 캐릭터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처럼 잘 짜여진 분업화로 시종일관 분위기를 경쾌하게 만든다. 트리거 역할을 하는 집념의 자영(고아성), 항상 힘을 복돋아주는 파이팅 넘치는 유나(이솜), 흩어진 증거들을 퍼즐처럼 맞춰 내는 회계팀의 보람(박혜수)이 연기의 합을 이룬다.

삼진그룹도 해외 투기 자본의 피해자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물론 자승자박이었지만), 이를 해결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개미 투자자나 소액 주주들이다. 이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모면한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주주자본주의’가 약탈적 자본주의라는 척박한 토양에 안착할 수 있다면 퇴행적으로 흘러가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제3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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