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눈 그리고 비

입력 2021-02-0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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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의사의 역할이 병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병이 가벼운지 중한지를 제때 구별하는 것도 있다.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검사를 해보자고 하면 잘 따르는 환자도 있지만, 약만 더 먹어 보겠다거나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올 거 같아 무서워 못하겠다는 환자도 있다. 가능하면 덮어두고 싶어한다.

우르르 몰려가서 단체로 하는 건강검진은 생활습관병 진단에는 좋으나 암 진단에는 미흡하다. 추가로 암 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는 5명 중 2명, 여자는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고, 국민 3명 중에 1명은 암으로 사망한다. 이렇게 흔한 암의 가장 중요한 예방법은 뭘까. 항암 식품, 맑은 물과 공기, 운동, 금연, 금주일까. 아니다. 정기적인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이다. 어차피 병원비로 나갈 돈이라면 조기 발견해서 완치하는 데 쓸지,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치료를 못하는 상태에서 생명연장을 위해 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달 6일, 12일, 18일에 많은 눈이 내렸다. SNS에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사진과, 도로가 마비돼 몇 시간째 갇혀 있다는 소식이 많이 올라왔다. 그때 우리 병원은 환자들의 신발에 묻어온 눈과 흙으로 인해 며칠 동안 계속 바닥 청소를 해야 했다. 매트가 있어도 소용없었다. 21일에는 겨울답지 않게 많은 비가 내렸다. 영상 10도라 비가 와서 다행이지 눈으로 내렸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을 거다. 눈이 내리면 하얗게 변한 세상이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인다. 하지만 눈이 녹기 시작하면 미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눈과 흙이 뒤섞여 거리는 엉망이 된다. 잠깐 동안 하얗던 세상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다. 비가 온 다음 날은 미세먼지도 사라지고, 거리에 쌓였던 흙먼지와 흙탕물이 튀어 지저분했던 차도 깨끗하게 씻겨졌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다툼이 생기게 마련이고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하는 게 좋듯이,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초기에 찾아내 바로 치료해야 한다. 눈처럼 덮어둘 게 아니라 비처럼 씻어내야 한다. 그러기에 생활인으로서, 의사로서 나는 눈보다 비가 좋다.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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