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의 경제 이야기-약팽소선(若烹小鮮)] 정부의 시장개입

입력 2021-01-3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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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석좌교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시장과 정부의 ‘적당한’ 관계의 설정은 경제학이나 경제정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다. 시장지상주의나 정부만능주의와 같은 양 극단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양 극단의 중간 어디가 그 해답이 될 것이고, 그것을 잘 찾아내는 것은 지적 호기심을 넘어서는 중요한 정책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부 개입의 정도가 가장 심했던 것은 1960~70년대, 즉 이른바 박정희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 시절은 고시가격이라는 이름 아래 직접적 가격통제가 실행되었고 법정환율로 외화의 가격도 통제되었다. 금리라고 하는 자본의 가격 역시 정부가 정하는 대로 통제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가격통제만이 아니다. 철강, 조선 등 새로운 산업 분야의 시작, 공기업 등을 통한 민간기업의 대체 등 정부의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의 예는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에 의한 관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매우 시장친화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쟁취한 신생국 또는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에 경제적 발전이 최우선적인 국가적 과제임에 틀림없었고, 그 방향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었다. 첫째는 우리나라와 같이 적극적 개방을 통해 대외지향적 발전전략을 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진국 주도의 세계경제질서는 후진국을 착취의 대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로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자의 방향을 택한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였고 어느 쪽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대외지향적인 정책을 택할수록 정부의 시장개입 또는 통제에는 불가피하게 한계가 나타난다. 결국 그 당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던 것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통제였고 그 경계를 잘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부분적) 정부개입형 시장경제가 지속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초기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80년대 초반 과감한 정부 개입의 축소가 1차 이루어졌고, 90년대 말 외환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재차 자유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경제에서 정부의 직접적 시장통제는 실질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흔히 우파 또는 보수정부가 상대적으로 시장친화적이고 좌파 또는 진보정부가 정부개입주의에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그 반대의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정치적 성향과 시장 개입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즉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보다 더 시장개입적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덜 개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경제의 발전 단계에 따라 정부의 시장 개입 적정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는 없고 한 단계 높은 성장을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제 경제발전을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과거의 주제가 되었다. 그보다는 각종 규제 등 정부의 시장 개입이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 정부 개입의 총체적 문제보다는 개별 정책의 효과를 살펴야 한다. 무조건 정부 개입이 바람직하다든가, 모든 개입은 나쁘다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다. 규제정책을 예로 들어 보자. 규제 중에는 꼭 필요한 것도 있고 이제 그 역할이 다 되어 없애야 할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규제까지 없애는 것은 옳지 않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철폐되어야 할 규제가 매우 많다. 규제 완화나 철폐, 더 나아가 정부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시장만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이라 하여 배척하려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은 이념이 아니라 효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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