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업무시간’은 절대적 판단 기준이 아닌 고려요소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09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뒤 조선소 현장에서 용접 업무를 담당하며 주·야간으로 근무했다. 그는 2016년 11월 1일부터 3일 연속 10시간씩 야간근무를 하다 4일 통증을 느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은 A 씨는 14일 사망했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으나 공단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2심은 “급성 심근염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것인데 용접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또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무시간, 업무의 내용이 면역기능에 이상을 초래할 만큼 육체적으로 과중하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누적시킬 정도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등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차적 기준이 되는 업무시간을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개정 후 52시간)’으로 규정한다.
A 씨의 1주 평균 업무시간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판단 근거가 됐다. 당시 A 씨는 근무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서 불규칙한 주·야간 교대 근무로 한 주에 30~56시간씩 근무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 씨의 업무상 질병을 인정할 수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서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될 수 없다”며 이에 근거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 고시에 의하면 A 씨의 업무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업무”라며 “급성 심근염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주 평균 52시간에 미달하더라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 씨는 평소 주·야간 교대 근무 등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초기 감염이 발생했는데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야간근무를 계속하던 중 급격히 악화해 상병이 발병해 사망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