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 영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A 씨는 덤덤하게 답했다. 그는 경기도 판교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이달 매출은 지난해 대비 정확히 절반이 됐다. “그래도 주변 식당이랑 비교하면 괜찮은 편이라네요.” 스스로를 달래려는 듯 씩씩하게 말하는 30대 사장의 말이 왠지 더 슬프게 느껴졌다.
올해 내내 죽을 쒔던 장사는 지난 8일 ‘거리두기 2.5단계’로 또 한번 고비를 맞았고, 23일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시작되면서 엎친 데 덮쳤다.
젊음은 역설적으로 ‘판교의 낮’을 황량하게 바꿔놓았다. 재택 비중이 높은 탓에 식당은 다른 어느 오피스 상권보다 한산하다. 이날 육전 등을 파는 주점에서 일하는 직원 B씨는 “지난달엔 하루에 140만 원어치 팔았는데, 이달엔 80만 원 팔기도 힘들다”며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시작이니 술 파는 저녁 장사는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인근 상권도 동반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면서 상가 곳곳에서 '임대 문의'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볼수 있었다.
대형 오피스 빌딩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C씨는 “근근이 유지하던 매출이 2.5단계 이후 예년의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임차료는 그대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의 점포에 발걸음이 끊겼지만 패스트푸드점만 유독 북적인다. 3대의 키오스크를 둔 버거킹 매장에는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식사 중인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두 눈은 4대의 스마트폰이 나란히 설치된 거치대를 떠나지 않았다. 한 손은 다음 배달콜을 받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다른 한 손으론 입에 빵 쪼가리를 연신 욱여넣고 있었다.
◇서울 고속터미널엔 빈 테이블만=이날 점심 시간대 서울 고속터미널. 막 플랫폼에 도착한 고속버스에서는 두어명 남직한 고객이 내릴 뿐이다. 평소라면 인근 직장인들과 고속터미널에서 쏟아져나오는 여행객들로 붐벼야 할 시간이다. 고속터미널역 인근에서 10년째 고기집을 운영해온 사장 D씨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열불 터져서 중간에 식당 불 다끄고 한강 다녀온다”라면서 “직원 5명 있었는데 다 내보내고 가족끼리 둘만이서 꾸리고 있다”고 했다. D씨는 장부를 펼치며 “오늘 13만원어치 팔았다. 보통 때였으면 150만원이다”라면서 “강남 금싸라기 땅에서 임대료만 나가고 인건비도 못 건지니 마이너스”라고 했다.
식당가인 파미에스테이션 랜드마크인 1층 시계탑 바로 맞은편 테이크아웃 파스타집은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주변에서는 줄서는 파스타집으로 유명했지만 최근 한달째 영업을 중단했다고 설명한다.
인근 한식 뷔페집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종업원 D씨는 “코로나 이전 200석 규모로 운영됐는데 지금 절반 아래로 테이블을 줄였다”라면서 ”5인 이상 예약은 받지 않지만 막상 5인 이상 손님이 올 경우 테이블을 쪼개 받아야 하는지, 정확한 기준을 몰라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람 대신 테이블을 차지한 건 포장용 음식이다. 브런치집, 수제 햄버거집, 피자집, 한식집 등이 들어선 식당가 테이블 곳곳에 봉지에 싸인 음식들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한 국수 가게는 단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고, 바 테이블에서는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도시락을 바쁘게 포장하고 있었다. 고속터미널역 출구를 중심으로 헬멧을 쓴 배달원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3분가량 서 있는 동안 3~4명의 배달원이 보였다. 인적 끊긴 고속터미널 파미에스테이션, 가장 분주한 사람은 배달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