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레딧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상반기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던 비우량채 시장에도 정부 정책의 온기가 점차 전해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코로나19 여파를 구조적이거나 일시적인 요인이라고 평가해 신용등급 자체를 조정하기보다는 아웃룩(전망)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문제는 올해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던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내년에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올해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된 기업 수는 2019년 대비 약 1.7배 늘었다. 김 연구원은 “신평사들이 등급 전망 기업 수 관리 차원에서 2021년 2분기 회사채 정기 평정 시기에 신용등급 하락 기업 수를 확대할 수 있다”면서 “올해 등급 전망이 내려간 기업 중 AA등급이 41%를 차지하는데, 이에 내년 신용등급 하락은 AA등급 기업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역대 최대 규모의 선제적 지원 정책이 발표됐다. 정부가 3월 회사채 시장 안정화 정책 지원을 발표한 후 다음 달인 지난 4월 최대 20조 원 규모로 작동을 시작한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는 AA 등급 이상의 우량 회사채를 중심으로 유동성을 지원했다. 이는 2013년 STX, 웅진 등 중견기업의 연쇄도산이 발생했던 시기에 도입된 안정화 정책보다 월등히 큰 규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7월 말부터는 정부와 중앙은행, 산업은행이 합작 출범해 만든 기업 유동성 지원기구(SPV)도 본격 가동을 시작해 비우량채에 대한 지원에도 나섰다. SPV는 기존 채안펀드보다 지원 범위를 넓혀 A등급부터 투기등급(BB)에 해당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위주로 매입했다. 이에 대우건설 ㈜두산, 세아제강 등의 다수 기업이 SPV의 도움을 받아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특히 회사채 시장 비수기인 연말에도 CJ CGV와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기업이 SPV 지원을 받아 자금을 조달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김은기 연구원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선제적 지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특히 자체 회복이 가능한 AA 이상 우량등급의 지원을 한 채안펀드보다 비우량채에 지원을 나선 SPV가 상대적으로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은 회사채 투자심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때까지 정부가 SPV 활동 종료 시기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SPV는 내년 1월 13일 운영 종료 예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정부는 17일 '2021년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SPV의 매입기한을 내년 7월까지 연장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