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가도 트럼피즘은 남는다] ① 바이든의 미국, 손상된 ‘품위’ 회복할까

입력 2020-12-15 16:51 수정 2020-12-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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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기, 오롯이 트럼프 탓 만은 아냐
프리덤하우스 “민주주의14년간 계속 뒷걸음질”
바이든 정부, ‘트럼피즘’ 속에서 무너진 경제와 민주주의 회생시켜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달 30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호텔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닉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달 30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호텔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닉스/AP연합뉴스
미국에서 14일(현지시간) 치러진 선거인단 투표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가 확정됐다. 올해처럼 미국 대통령 선거가 높은 관심을 받은 적이 또 있을까.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의 리더를 뽑는 이벤트는 언제나 화제가 되지만, 2020년은 유난했다. 올해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수가 1억5000만 명을 넘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한 대선으로 기록된 것은 그 화제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면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에도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이 들린다. 선택적 민주주의와 세계 초강국의 손상된 품위, 트럼피즘 등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여전히 부정 선거라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떠나더라도 선거를 계기로 불거진 병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민주주의의 진짜 위기는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부터 더 본격화할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 한 번의 임기 만에 미국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쳐놓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해임하는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되찾아달라.”

올해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직전 70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트럼프 대통령 재선 반대 성명의 일부 대목이다. 해당 서한에는 올해 노벨상을 받은 폴 밀그럼과 올리버 하드, 앨빈 로스 등 7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함께 서명했다. 대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행보와 선거 시스템 불신 등은 이들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해줬다.

한때 민주주의의 전형이자 모범사례로 칭송받던 미국의 정치는 올해 대선을 기점으로 그 명예를 완전히 실추했다. 에드워드 루스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지역 수석 해설자는 “20년 전에는 모두가 미국 민주주의를 신뢰할 만한 모범으로 여겼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미국 언론과 민주당은 그 책임의 화살을 모두 트럼프 대통령 한 명에게로 돌리고 있다. 물론 그가 망가진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책임을 오롯이 트럼프 대통령 1인에게만 돌리기에는, 한때 세계의 종주국이라 불리던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불과 4년 만에 엉망이 될 만큼 허술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고 FT는 지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절대 허술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인 만큼 단시간에 무너질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이념은 중요한 사안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기원전 그리스 아테네에서부터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그 뿌리로 두고 있다. 미국 내 역사로만 살펴보더라도 1865년 미국 남북전쟁 종결과 함께 노예 해방, 흑인과 여성의 참정권 등 수많은 투쟁과 노력의 산물로 이뤄졌다. 이러한 토양 위에 세워진 것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체제, 양원제, 연방제를 토대로 둔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다.

바꿔 말하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트럼프 정권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민주주의 위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민주주의 평가단체인 미국의 프리덤하우스 보고에 따르면 지난 14년 동안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계속 뒷걸음을 쳐왔다. 트럼프 정권하에서 ‘가짜 뉴스’와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난무하면서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품위를 잃기는 했으나, 트럼프 등장 이전부터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업가이자 정치 신인인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전 세계적인 포퓰리즘 물결을 타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미 그때부터 미국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훼손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트럼프는 떠나고 바이든의 시대가 열린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진짜 시험대에 섰다. 바이든 정부는 이제 그들이 강조하던 자유와 평등, 정의 등의 덕목들을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그에 따른 경제 위기도 새로운 정권의 주요 과제이지만,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회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시급한 숙제다.

물론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간의 숱한 거짓말과 막무가내식 행보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2016년 당선 때보다 1000만 표나 더 많은 표를 획득했다. 아직도 수많은 미국 유권자가 트럼프식 포퓰리즘과 극단주의를 선호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와 인종 차별 항의 시위가 없었다면 미국에는 ‘포스트 트럼프’가 아니라 ‘어게인 트럼프’ 시대가 왔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미국에 남아있는 트럼피즘 속에서 무너진 경제와 민주주의를 살려내야 하는 바이든 당선인의 어깨가 무겁다.

용어 설명 = 트럼피즘(Trumpis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단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적인 거버넌스 스타일을 가리킨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 극우 보수주의자의 이념과 전 세계에 퍼진 포퓰리즘이 결합했다. 트럼프의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도 트럼피즘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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