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는 어느 시대에서나 변화에 인색했다.
세대 변경에 맞춰 디자인을 바꿀 때도 신중했다. 알맹이를 다양한 첨단 장비로 채울 때도 디자인 변화는 소폭에 머물렀다. 새로운 유행에 겁 없이 뛰어드는 것 자체가 자칫 경박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 변경 주기도 긴 편이다. 7년마다 완전변경 모델을 내놓고 그 중간 기점(약 3.5년)에 맞춰 마이너 체인지, 이른바 '뉴 제너레이션'을 선보였다.
뉴 제너레이션들은 앞모습만 살짝 바꾸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뒷모습은 이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곤 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2020년, 이런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런 굴레가 깨졌다. 2016년 등장한 10세대 E-클래스는 지난달 국내에 페이스 리프트를 선보였다. 벤츠답지 않게 앞뒤 모습에 과감한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다.
먼저 V자 형태의 프런트 그릴은 안정적인 A자 형태로 변했다. 이전 모습이 날렵했다면, 새 모델은 한결 웅장하면서 안정감 있는 분위기다. 이를 위해 앞범퍼와 보닛, 좌우 펜더까지 새로 짰다. 벤츠로서는 과감한 시도다.
덕분에 사진에서 봤던 2차원 매력보다 눈 앞에 펼쳐진 3차원 매력이 한결 크게 다가온다. 실제 바라봤을 때 더 안정감 있고 육중하며 공격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뒷모습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정점인 S-클래스를 빼닮았다. 세로형이었던 후미등을 가로형으로 바꾸면서 한결 우람해졌다. 나아가 비싼 차 분위기도 가득하다.
실내 배열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 다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다양한 첨단 장비로 채웠다.
가장 먼저 ‘더블덱’ 타입의 새로운 스티어링 휠(운전대)이 눈길을 끈다. 3스포크 타입을 기본으로 좌우 스포크를 위아래 이중으로 나눴다. 윗급 S-클래스에도 이 방식이 쓰인다.
멋들어진 운전대 위에는 레벨 2.5 수준의 자율주행보조시스템을 비롯해 다양한 장비를 제어할 수 있는 조작부를 심었다. 나아가 운전대 아랫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낸, 이른바 'D 컷' 스타일도 고성능을 상징한다.
시승차는 직렬 4기통 2.0 디젤 엔진을 얹은 E 220 d다. 여기에 9단 변속기와 벤츠 고유의 네 바퀴 굴림 시스템인 4매틱을 맞물렸다.
서울 도심에서 경기도 포천을 오고 가는 왕복 100㎞ 시승 구간에서는 넘치는 펀치력을 마음껏 뿜어낸다.
최고출력 194마력을 내는 2.0 디젤은 이전의 2.2 디젤 엔진(최고출력 170마력)을 대신한다. 배기량을 줄였으되 출력을 끌어올린 엔진이다. 배기량을 줄이면서 오히려 고회전 펀치력은 더욱 거세졌다.
이전보다 배기량을 줄이면서 엔진 스트로크(피스톤의 상하운동 범위)도 함께 줄었다. 자연스레 고회전까지 쉽게 솟구치고 회전 질감도 부드러워졌다. 좀 더 높은 회전수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9단 변속기 역시 디젤 엔진의 제한적인 회전수를 알차게 나눠쓴다. 굳이 높은 회전수를 경박스럽게 이용하지 않아도 저회전 영역에서 치고 달리는 맛이 꽤 경쾌하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낮은 회전수로 경쾌하게 치고 달리는 모습이 디젤의 매력 그대로다. 회전수를 낮게 쓰는 만큼, 차 안으로 스며드는 디젤 특유의 소음도 적은 편이다.
새 모델은 다양한 첨단 장비도 가득 얹었다. 정속주행 때는 전방 도로의 속도제한 표지판을 자동으로 인식, 스스로 감속하거나 가속하는 기능도 달렸다. 증강 현실 내비게이션은 실시간으로 비치는 도로 화면 위에 진행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처럼 새 E-클래스를 통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디자인 변화는 소폭에 머물러 있지만 볼수록 매력이 가득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새로운 유행에 겁 없이 뛰어드는 게 아닌, 스스로 프리미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나아가 고급차로서의 당위성과 함께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 E-클래스를 앞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