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 기자와 만난 경제학 교수는 정치권이 유독 기업인들을 공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기업=거악'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이 100% 옳은 건 아니다. 사익을 위해 불법을 저지른 기업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과거 산업화 고성장 시대에 경제에 이바지한 만큼 대기업들의 흠도 많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수의 말을 흘러 들을 수 없었다. '경제정의'라는 탈을 쓰고 자신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업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반복되는 ‘기업인 증인 채택’ 논란이 대표적 사례이다. 주요 사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국회의원들의 해명은 그럴듯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원들은 매년 국감에 출석한 기업인에 호통을 치며 군기 잡기에 바빴다.
국감 때만 기업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선거 때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할 거 없이 기업 규제 법안을 시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규제가 약하다는 것이 이유다.
과연 그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규제 수준은 OECD 35개 회원국 중 5위를 기록했다. 법인세 최고세율(27.5%)은 미국 등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높다.
표 획득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기업이 처한 현실은 암담하다.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니 미래 먹거리 확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는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근 해외기업 인수합병 거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기업이 곤경에 처했음에도 정치권은 쉽게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지금 국회에서는 재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업규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태세다.
규제와 호통만으로 경제정의를 바로 세울 수는 없다. 오히려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은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