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처리를 앞둔 지난 7월30일. 윤 의원은 국회 본회의 단상에 올라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임대차법 강행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전세가 너무 빠른 속도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면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꼬집었다.
시장에선 전세제도가 100여 년을 유지해 온 나름의 특수성 때문에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장기적으로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팍팍한 월세살이 속, 한 푼 두 푼 모아 내 집 마련으로 가던 징검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전세시대가 저물어 가고, 월세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서민 주거비 부담 '눈덩이'로 고통
전세제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만의 ‘희귀템’이다. 전세제도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당시 인천과 부산,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 등으로 서울 인구가 급격히 늘었는데 이 때부터 임대차 관계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이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전세제도는 산업화 과정에서 보편적 주거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다가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최소 임대기간이 2년으로 연장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세입자 입장에서 월세는 사라지는 돈이지만 전세 자금은 주머니에 다시 넣을 내 돈이다. 그래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집주인에게는 또다른 투자를 위한 밑천 마련의 사금융 역할을 해왔다. 집을 사는 사람이 자금 마련이 버거울 때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를 할 수 있는 것도 전세제도 덕이다. 자칫 보증금을 떼일 치명적인 리스크도 있지만 전세는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지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다.
전세시장이 대혼란에 빠진 건 지난 7월이다. 정부와 여당이 임대차법 통과를 밀어붙이면서 보증금을 자유롭게 받을 수 없게 된 집주인들이 너도나도 보증금을 높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말라가던 전세 물량이 크게 줄었다. 실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9월 15일 기준 6271건에 그쳤다. 전월 대비 40% 가까이 급감했다.
전세제도는 이미 소멸화의 길에 들어섰다. 국내 주거 점유 형태에서 전세 비중은 2006년 22.4%였지만 2014년 처음으로 20% 아래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전세 비중은 15.1%로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월세 비중은 확대됐다. 2006년 15.3%였던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 비중은 지난해 19.7%로 늘었다. 임차가구 시장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지난해 기준 월세와 전세 비중은 약 6대 4다. 2012년 월세가 처음으로 전세를 누르고 역전한 뒤 줄곧 월세가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시장에선 임대차법 시행으로 월세의 비중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점친다.
이투데이가 건설·부동산 전문가 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0년 후 부동산시장 전망’에서도 응답자의 37.9%가 주택시장에서 전세 비중을 20% 미만으로 봤다. 반면 응답자의 절반인 48.3%가 월세 비중을 30% 이상으로 예측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택 보급 문제가 이전 대비 해소됐고,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해 전세금을 다른 투자처에 넣어야 하지만 그러기엔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라며 “낮아지는 기대수익률로 전세는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월세의 공습으로 눈덩이 처럼 불어날 주거비 부담이 일부 계층에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슈바베 지수(Schwabe Index·가계 소비지출 중 주거 관련 지출 비율)는 월세 비중이 커질 때 더 상승한다. 수도권에선 임차가구의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중(RIR)이 2016년 이후 계속 상승 중이다. 김 연구원은 “월세시장이 확대되면 주거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주택은 소유가치보다 이용가치로 이동할 가능성이 큰데 이런 주거비 부담이 내 집 마련 열망을 강하게 키우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 전세 비중 오히려 높아질 수도
다만 전세의 ‘빠른’ 소멸엔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갭투자자의 존재가 변수다. 지난 5월 기준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이뤄진 갭투자 비중은 72.7%에 달했다. 김 위원은 “정부가 전월세 전환율을 2.5% 수준으로 낮추면서 월세 전환의 유인마저 없애고 있다”며 “자금 여력이 없는 갭투자자의 경우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건 타격이 커 전세 소멸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전세 소멸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전세제도는 임차인과 임대인의 의사 합치로 유지된 제도여서 비중만 줄어들 뿐 20% 내외로 유지될 것”이라며 “오래된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대학원장은 “서울, 특히 강남은 임대차시장에서 월세나 반전세(보증부 월세)가 대세가 돼 전세시장이 상당히 쪼그라들 것”이라면서도 “지방은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약화로 전세 비중이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