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초기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건 저임금 노동자(블루칼라)들이었다. 블루칼라 집단은 일회성 노동이나 대면 서비스를 할 수 없어 일자리를 모두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이젠 고소득층인 화이트칼라들까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이트칼라 붕괴의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실종과 거액의 부채다. 미국 일자리조사기관인 고용자복지연구소(EBRI)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세전 소득이 연간 9만8018달러 이상인 세대는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부채(nonhousing debt·비주택부채)가 9만2000달러에 달한다. 이는 2004년에 비해 32% 증가한 것이다. 소득 수준이 5만2655~9만8018달러 사이인 세대의 평균 비주택부채는 같은 기간 33% 오른 3만3378달러였다.
이들 중산층은 부채가 많이 쌓인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고정소득이 사라지며 생계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스틱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이후 근로자 1700만 명의 소득이 줄었다”며 “950만 명은 급여가 삭감됐고, 750만 명은 근무 시간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앤서니 카니발 조지타운대 교육노동연구소 교수 역시 “코로나19는 대학 교육을 받은 중산층 세대에 대한 중대한 공격”이라며 “전문직 노동자들이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업률에서도 화이트칼라 집단의 어려움은 두드러진다. 구인·구직사이트인 집리크루터에 따르면 8월에 연소득이 10만 달러 넘은 구인 게시물 수는 4월에 비해 19% 감소했다. 미국의 전체 실업률은 코로나19가 극심했던 4월 14.7%까지 치솟았다가 8월 8.4%로 떨어졌지만, 분야별로 편차가 크다. 예술과 디자인, 미디어,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부문의 8월 실업률은 12.7%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교육 부문 실업률은 10.2%로 2배 이상 늘었다.
고소득 직종의 실업률도 크게 뛰었다. 건축가와 엔지니어는 세전 소득이 주당 평균 1826달러로 정규직 평균 주급인 1389달러보다 훨씬 높다. 이들의 지난해 실업률은 0.8%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3.7%로 늘었다. 평균 주급이 1919달러인 컴퓨터와 수학 관련 직종도 실업률이 4.6%로 작년보다 3배가 넘게 늘었다.
화이트칼라의 위기는 재택근무로 버티던 기업들이 결국 대량 해고 방침을 꺼내 든 것과 연관이 있다.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은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한 정부 지원이 종료되는 다음 달부터 대량 감원에 돌입한다. 아메리칸항공의 감원 규모는 1만9000명에 이른다.
월가의 대표 은행들도 코로나발 장기 침체에 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번갈아 하는 ‘순환 근무’를 영구적으로 도입키로 했다. 씨티그룹의 마이클 코뱃 최고경영자(CEO)는 7월에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코로나19 팬데믹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화이트칼라의 위기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때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8월 미국 노동통계국(BLS)은 25세 이상 학사 학위를 가진 구직자가 33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월의 120만 명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인 데다 2008년 경기 침체기 당시 학사 학위 소지 구직자가 220만 명이었던 것에 비해서도 높은 숫자다. 미국계 신용카드회사 디스커버파이낸셜서비스의 로저 호치쉴드 CEO는 “지금까지의 경제 위기는 저소득 노동자에게만 국한됐었는데, 화이트칼라의 대량 실업은 이제 시작”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