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표단 등을 태운 이스라엘 엘알항공 소속 보잉737기는 이날 수도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을 출발해 UAE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비행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처음으로 이스라엘 국적기가 걸프 지역의 영공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진 않았지만, 이스라엘 국적기의 수도 리야드 상공 통과를 허용했다. 이는 사우디가 UAE의 평화 협정을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전체의 화해 움직임을 상징한다.
특별 항공편명은 UAE의 국제전화 국가번호에서 따온 ‘LY971’로 명명됐다. 아부다비에서 텔아비브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이스라엘의 국가번호에서 따와 ‘LY972’다. 중동 평화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비행기 기체에 아랍어와 히브리어, 영어로 ‘평화’라는 글자도 새겼다.
이날 비행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대표단도 동행했다. 유대인 출신인 쿠슈너는 이스라엘과 UAE의 평화 협정 체결 과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쿠슈너 선임보좌관은 취재진에게 “역사적인 비행”이라며 “전 세계 무슬림과 아랍인이 비행을 지켜봤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다. 미래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UAE는 지난달 13일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관계가 급진전했다. 이스라엘은 합의에 따라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합병을 중단키로 했다. 합의 당시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위해 대표단을 보내 만나기로 했는데, 이번 특별 비행은 그 후속 조치다. 양국 대표단은 항공과 관광, 무역, 경제, 금융, 보건, 에너지, 안보 등 광범위하게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UAE는 이스라엘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함에 따라 지난달 29일 대통령령으로 1972년부터 이어져 온 ‘이스라엘 보이콧법’ 폐지를 명령했다. 이 법은 이스라엘 국적자나 회사가 UAE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도록 명시했지만, 이 법이 폐지되면서 UAE 기업과 개인이 이스라엘에 입국해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UAE는 이스라엘이 가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5% 정도로 선진국 수준과 맞먹는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제약, 의료과학 등의 분야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중동의 금융 허브’로서 두바이의 지위를 굳힌 UAE는 첨단기술 개발에서 지역을 선도하고 있다. 7월에는 아랍 국가에선 최초로 화성 탐사선 발사에 성공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역사의 새로운 시대”라며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UAE 대표단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도록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스라엘과 UAE 대표단이 상대국에 대사관을 설치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과의 경제 협력의 성공은 다른 아랍국가의 동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각국은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구축을 위해 구조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UAE에 이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랍 세계의 실질적 수장 역할을 하는 사우디는 이스라엘 국적기의 자국 상공 통과를 묵인했지만, 공식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먼저”라는 기존 입장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지난달 팔레스타인은 UAE가 단독으로 이스라엘과 외교 정상화에 나서자 강하게 반발했다. 무함마드 슈타예 총리는 “양국 간 외교 정상화에 항의하기 위해 내년에 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엑스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