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ㆍ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정부 검토 단계에서 결국 보존하는 쪽으로 일단락됐다.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놓고 개발과 환경 보존의 가치는 과거부터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왔다.
도심의 허파 기능을 하는 그린벨트는 1971년 박정희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반경 15㎞ 라인을 따라 폭 2~10㎞ 구간을 ‘영구녹지지대’로 묶었다. 한국의 첫 그린벨트 지정이었다. 도시의 과밀화 방지와 자연환경 보전, 도시민의 여가지역 확보, 대기오염 예방, 상수원 보호, 국가안보 등이 지정 이유였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수도권 그린벨트가 2배로 확대됐다. 이후 부산·대구·춘천 등 전국에 걸쳐 5397㎢가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녹색 성역’이란 별칭이 붙게 됐다.
1979년부터는 그린벨트 해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소송으로 번졌다. 하지만 환경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가 승소하면서 수도권 그린벨트가 순차적으로 풀리게 됐다.
그린벨트를 본격적으로 해제한 것은 노태우 정부 들어서다. 당시 주택 200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그린벨트가 대거 풀렸다. 당시에도 대기환경 오염을 우려하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대규모 주택 공급으로 집값을 안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정부는 아예 그린벨트 해제 공약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린벨트 내 근린시설 신축을 허용하고 춘천과 전주, 제주 등 7개 중소도시권의 그린벨트 781㎢를 해제했다.
여론과 학계 등의 반대 의견을 수용해 수도권 등 7개 대도시권의 그린벨트는 부분적으로 해제하며 343㎢의 총량 안에서 단계적으로 풀기로 결정했다. 관리계획과 토지 매수, 주민 지원, 훼손 부담금 제도 등을 담은 개발제한구역법령도 제정했다.
강원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294㎢의 그린벨트를 풀었다. 대기 질 저하를 우려한 환경단체의 반발이 크게 일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이 최대 난제인 시기였다.
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린벨트 개발과 보존의 갈등은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사업을 위해 그린벨트를 654㎢ 줄였다. 경남(272.6㎢)과 전북(225㎢)에서 해제 규모가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서울 강남과 서초의 그린벨트 88㎢를 풀었다. 박근혜 정부도 민간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사용했다.
현재 서울에 남은 그린벨트 면적은 150㎢ 규모다. 문재인 정부에서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 일대가 해제 1순위로 검토됐지만 서울시의 강경한 반대에 막혀 왔다.
이들 지역은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을 짓고 남은 땅으로 보존가치가 크지 않다는 의견과, 미세먼지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반발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벨트는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결정하면서 공은 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