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권에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A 씨는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10일 이날 다주택자에게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양도소득세(양도세), 취득세 등 세금 부담을 늘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A 씨의 아파트 공시가격은 두 채를 합쳐 약 50억 원. 정부 발표대로면 A 씨가 해마다 내야 하는 종부세는 지금보다 1억 원가량 늘어난다. A 씨는 공인중개사 등과 상의해 아파트를 계속 안고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A 씨 아파트가 해마다 2억 원가량 늘어난 것을 생각하면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생각에서다.
◇ '급매물 던지기' 진즉 끝나…집값 상승 기대에 "버틴다"
정부가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를 겨냥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 방안(7ㆍ10 대책)’을 발표한 후 시장에선 눈치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주택 소유자는 늘어난 세금 부담과 집값 상승 여력을 따져보고 수요자들은 급매물을 노리고 있다. 7ㆍ10 대책의 유효 기간이 이 싸움에 달려 있다.
7ㆍ10 대책 후 첫 주말과 휴일인 11~12일, 이른바 서울 ‘대장 아파트(시장을 주도하는 고가 아파트)’로 불리는 단지 주변 공인중개업소는 분주했다. 고강도 부동산 증세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공인중개업소 절반가량은 아파트 매매를 알아보려는 손님을 받고 있었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인근 R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팔까 고민하는 사람 반, 버텨 보겠다는 사람 반”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강남권에서 2주택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은 이제 세금 부담을 버틸 수 있는 이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세금을 부담하기 힘든 사람들은 대부분 올해 상반기 양도세 중과 유예 기간에 물건을 처분했다는 게 그의 논거다. 서울 강남권 집값은 양도세 절세를 위한 급매물이 몰린 4~5월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이들 물건이 소진되자 다시 반등하고 있다.
◇"정권 바뀔 때마다 기다리면 장땡"…매물 잠김 우려
R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올 연말이 변곡점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지금도 사려는 사람은 많지만 가격을 낮춰 팔려는 집주인이 없다. 한동안 매물 잠김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일단 거래가 재개되는 순간 계단식 가격 상승이 다시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가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 도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는 순간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남권과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구) 일대 자산가를 대상으로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H 씨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지금까지 세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오른 걸 보지 않았냐. 어차피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덤벼 댈 텐데 이젠 불안 심리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H 씨는 “양도세를 말도 안 되게 때린다고는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게 다주택자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대책도 빠져나갈 구멍은 무궁무진하다”는 H 씨는 전날부터 고객들과 절세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가 고객에게 추천하는 것은 증여와 법인 설립이다. 정부가 법인 소유 부동산에 주던 세금 혜택을 줄인 데 이어 증여 취득세 증세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아직은 증여와 법인에 세금을 줄일 수 있는 틈새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시적 2주택자 예외규정안 없어 혼선…올 연말이 변곡점
신중한 의견도 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인근 G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적어도 3개월 동안은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며 “12ㆍ16 대책 때도 그러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다만 이날 G공인중개사를 통해 주택을 사려던 한 고객은 계약을 보류했다. 기존에 살던 집이 팔리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계약하면 일시적이나마 2주택자로 취득세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걱정에서다. 7ㆍ10 대책에서 정부는 애초 기본세율(1~3%)을 적용받던 2주택자 취득세 세율을 8%로 올리기로 했다.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에선 일시적 2주택자 등에 예외 규정을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안(案)이 나오지 않아 시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종부세 및 양도세 중과세율 인상안은 매수 심리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집값 상승장에서는 늘어난 세금 부담보다 집값이 더 오를 수 있어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