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가 대작한 그림에 가벼운 덧칠만 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 씨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 씨는 2009년경부터 2016년경까지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A 씨에게 약 200점 이상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해 판매한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 씨는 A 씨에게 1점당 10만 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회화로 표현하게 했다.
1심은 다른 화가가 그림 제작에 참여한 사실을 고의로 숨기고 판매했다고 보고 조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 씨가 기술 보조자에 불과하고 조 씨 고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조 씨가 작품을 직접 그렸다는 ‘친작’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고지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을 인정했다.
또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는 작품에 위작 여부,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이 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고 조영남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니었다”며 “피해자들이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했는데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해 지난달 28일 공개변론을 열어 검찰과 조 씨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예술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