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가 불법적인 적대적 기업 인수ㆍ합병(M&A)으로 인해 지출하게 된 손해배상금을 손금에 산입할 수 없게 됐다.
손금산입은 기업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았으나 세법상 비용으로 처리되는 회계 방법으로 손금산입이 늘어날수록 기업의 법인세는 줄게 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 부장판사)는 신한금융지주가 남대문세무서를 상대로 “2016 사업연도 법인세 중 57억9900여만 원의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신한은행은 2005년 신호제지를 상대로 한 불법적인 적대적 M&A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돼 대법원으로부터 150억 원의 손해배상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2016 사업연도 법인세 신고 시 207억 원(손해배상금+지연손해금) 상당의 금액을 손금산입했다.
그러나 서울지방국세청은 2018년 신한은행에 대한 법인 제세 통합조사를 벌인 뒤 손금산입한 손해배상금을 손금불산입하면서 법인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는 조세심판원에 “민사사건 확정판결에 따라 지급한 손해배상금을 손금불산입한 것은 위법하다”며 심판청구를 했으나 기각당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은행 등을 연결자법인으로 하는 연결납세방식을 적용해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다. 연결납세제도(Consolidated tax return)는 모회사가 자회사와 경제적으로 결합해 있는 경우 두 회사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소득을 합쳐 법인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신한금융지주는 “법인세법은 기본적으로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한 손해배상금을 손금으로 인정하고, 이를 손금불산입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해야 한다”며 법인세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신한은행은 경영권 이전을 통한 안정인 채권 회수를 꾀한 것으로 동기 자체는 합리적이고,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현저히 해함으로써 사회질서 위반의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불법행위를 이유로 지출하게 된 손해배상금을 손금에 산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손해배상금은 법인세법상 손금 인정 요건인 사업 관련성, 통상성 및 수익 관련성이 인정되는 비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아울러 재판부는 신한은행의 행위에 수차례 ‘이례적’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내 상위 대형 금융기관인 신한은행이 경영권 탈취에 편승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까지 직접 행사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더욱이 다른 사람 명의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이 상당히 위험성이 큰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무자본 기업 인수를 시도하고 있는 국일제지로부터 형식적인 담보권만 취득한 채 주식 매수를 감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한은행은 다수의 예금자와 관련을 맺고 있어 고도의 주의의무를 통해 건전 경영을 유지해야 할 시중은행으로서 은행의 고유 업무 범위를 제대로 유지해야 함에도 이를 벗어난 매우 이례적인 거래를 별다른 교섭도 거치지 않은 채 단시간 내에 완결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는 당시 대법원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016년 11월 신호제지 전 경영자 엄모 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신한은행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엄 씨는 2005년 이모 씨의 명의를 빌려 신호제지 경영권을 인수했으나, 이 씨는 엄 씨 등의 의사를 무시하고 명의신탁된 주식 320만여 주 중 270만여 주를 신한은행에 매각했고, 결국 신호제지는 국일제지에 인수됐다.
대법원은 신한은행이 이 씨의 의도를 알고도 횡령 행위에 가담해 주식을 사고, 국일제지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등 공동 불법행위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2009년 보관 중이던 타인의 주식을 매각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