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직사각형 아파트를 당연시하던 20년 전 시절, 콘크리트 건축물에 '이름'을 붙여준 단지가 등장했다. 삼성물산의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의 시작이다. 브랜드 론칭 당시에는 다소 낯설게 들렸던 래미안이란 이름에는 미래(來)와 아름다움(美), 편안함(安)이라는 가치를 담았다.
이후 아파트의 패러다임은 단순히 먹고 자는 집의 개념에서 심미적인 디자인과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공간 배치, 안전하고 아늑한 실내 공간과 주거 단지 조성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형 건설사들까지 고유한 명칭의 아파트 브랜드를 잇따라 선보였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래미안은 한국산업의 브랜드 파워(K-BPI) 19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22년 연속(구 삼성아파트 포함), 국가브랜드 경쟁력지수(NBCI) 17년 연속,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5년 연속 1위를 이어갔다. 그 중심에는 래미안에 디자인 철학을 입힌 이시은 삼성물산 건축토목사업부 상품디자인그룹 수석이 자리한다.
◇입주민ㆍ주부 의견 디자인 반영=“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는데 1993년도에 졸업하고 설계사무소에서 들어갔어요. 삶의 공간을 다루는 주거설계 업무를 보다가 2005년 삼성물산에 입사하게 됐지요. 입사 후에는 주택 설계와 익스테리어 업무를 수행하다가 2018년 상품기획과 설계업무의 리더를 맡았습니다.”
건축사인 그가 중시하는 가치는 사람이 살고 싶은 집을 짓는 일이다. 이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는 물론 실제 입주민과 주부들에게 의견을 듣고 연구개발 과정에 반영한다.
이 수석은 처음 봤을 때 화려하게 설계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과 함께 나이 들면서 매력이 깊어지는 공간을 추구한다. 수많은 수상 실적은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줬다.
“독일의 레드닷(Red Dot)과 iF(International Forum), 미국 국제디자인공모전(IDEA) 등 국내외 유수 어워드 수상 실적만 150건이 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굿디자인(GD) 국무총리상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우수 디자이너 선정 등의 영예를 안기도 했지요.
2015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래미안 첼리투스는 당시 아파트에 적용하지 않았던 과감한 커튼월과 스카이 브릿지를 시도했어요. 한강뷰가 보이는 스카이 브릿지에 커뮤니티 시설과 입주민 카페를 계획했습니다. 거주하는 입주민에게 특별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면서 만족을 느낀 대목이지요.”
이 수석은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내공에 가용한 모든 아이디어를 더해 회사가 재건축 사업 시공사로 입찰한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단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이끄는 반포3주구(재건축 단지명 '구반포 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 수주 프로젝트팀이 총집결했다. 수주에 성공하면 반포3주구를 강남권의 랜드마크 단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래미안 첼리투스'에 공중통로 만들어 주민 카페로 활용= 지난달 삼성물산은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 재건축 사업을 따내며 5년 만에 정비사업 시장에 화려한 복귀를 알린 바 있다. 신반포15차에 이어 반포3주구 재건축 사업을 수주해 '강남은 래미안'이라는 공식을 명실공히 구축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회사는 반포3주구 현장에 구반포 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의 설계와 디자인을 관람할 수 있는 홍보관을 개장했다.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까지 직접 나서 전사적인 수주 열의를 보이고 있다.
“지난 몇 달간 수십 명의 직원이 수주 프로젝트에 전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멋스러움을 잃지 않는 보석 같은 아파트를 만들고 싶어요. 디자인은 특별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공간에서 경험하는 시간까지도 추억으로 깃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포3주구 단지 내에 '헤리티지 레이크'라는 호수를 설계했어요. 호수 안에는 보트 체험을 계획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탈 수 있는 아이템을 제안했습니다. 실제로 시공되면 얼마나 멋질까 벌써부터 설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는 이같이 섬세한 아이디어가 삼성맨으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상생활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동시에 디자인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게 래미안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이라는 조직에서 여성으로 느끼는 한계보다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도 했다.
“주거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업무이다 보니 생활을 더 풍요롭고 편안하게 만들 디자인을 늘 고민합니다.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과 이해하려는 마음이 좋은 상품과 디자인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디자인 부서 특성상 여직원이 많은 조직이라서 리더로서 직원들과 소통할 때도 깊이 공감하려고 노력해요. 이런 것들이 여성으로서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장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건축가는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은 간결하고 심플한 형태로 유명하다. 건물의 본질을 살리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자신이 맡은 임무 역시 주거의 본질을 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한다. 이 수석은 지금의 부서 후배들과 입사에 도전하는 디자인 학도들에게 전할 조언도 잊지 않았다.
◇주거상품 디자인은 '종합예술'… 풍요롭고 편안한 삶의 공간 추구= “주거상품 디자인 업무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상품을 기획하고, 주거공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죠. 그래서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도 많이 보고 전시회도 많이 가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트렌드에 민감해야 합니다.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거상품을 기획하려면 인문학적인 소양도 함께 필요하겠죠.
상품디자인 부서의 업무 범위는 굉장히 넓습니다. 관련 자격증으로는 건축사, 시공이나 구조기술사, 컬러리스트 등이 있겠지요. 건축사는 건축 계획안과 설계도서를 작성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자격증이라서 아파트의 평면과 전체 동 계획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건축사가 있는데 그 때 공부한 내용들이 실제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아파트의 입면 컬러는 더 다채로워지고 있어 아파트 전체의 느낌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가구 내부의 전기제품이나 조명 디자인 등에도 색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실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조나 시공 기술사가 있다면 디자인 단계에서 미리 시공의 품질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상품에 대한 관심과 열정입니다. 이것이 기본이 된다면 비전을 가진 청년들이 이 분야에 도전해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