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 "소수자 지역구 후보 할당 같은 정당 차원 배려 필요"
전문가 "위성정당 '꼼수' 피해, 고스란히 '소수자' 몫"
4.15 총선에 처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는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줄이고 다양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함이다.
그러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위성비례정당' 이 '꼼수'로 등장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특히 여성·청년·다문화 가족 등 정치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입지가 좁아졌다는 지적이다.
이투데이는 5일 정치적 약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이주민들을 만나 이번 총선 관련 목소리를 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인구 5200만 명 대비 외국인 비중은 5.82%로 OECD 평균(5.7%)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지만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 개선은 부족하단 얘기가 나온다. 이주민 대부분은 이번 총선에서 다문화 지원 확대를 기대하면서도 자신들의 대변해 줄 자리가 줄어들 것을 두려워했다.
중국 결혼이주 13년 차인 한 여성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이 점차 줄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주여성에 대한 활동 혜택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기존 지원 제도 대상에서 빠진 것들이 있다"면서 "아무래도 한국 사람을 먼저 지원하고 우리 같은 다문화 가정은 밀린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결혼이주 10년 차인 다른 여성도 "14살 딸아이가 한국어 교육 무료 지원을 받을 때 큰 도움이 됐는데 요즘은 다문화 가정도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어 때문에 정보를 이해하는 자체가 어려워 신청을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잘 알려줬으면 좋겠다"면서 했다.
다문화가정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필리핀 결혼 이주 12년 차인 한 여성은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다문화가정센터에서 교육받아서 좋았다. 나도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그런데 이번 총선으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문화 가정 아이에 대한 지원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비례대표 정당의 이주민 관련 공약은 미흡해 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알리미를 살펴보면 후보로 나온 각 정당의 공약에 이주민이 언급된 곳은 정의당뿐이었다.
이 때문에 정당 차원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단 의견이 나온다. 이자스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소수자들은 지역구 출마가 어려워 정당 차원에서 ‘준비된 후보’로서의 할당과 같은 배려·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선거철에 '반짝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정당마다 정치·정책 아카데미 등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이주여성 인권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등 지원 대상에 외국인 제외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며 "재난은 외국인을 피해 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당 차원에서 현명하게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했다.
총선에서 정당의 다양성보단 정책의 다양성이 중요하단 주문도 나온다. 다문화가정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이주 여성의 현주소는 공장, 식당 등 단순 노동에 치중돼 있는데 사실 이들의 전문성을 살릴 기회가 많다"며 "사회 배려계층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차별금지법, 이주여성 체류안전 정책과 같은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모든 정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를 어겨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수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는 소수자 의석을 반영하는 것을 취지로 하는데 이번 총선에서 모든 정당이 자기 정당을 한 석이라도 얻고 승리해 집권한 것을 목표로 했다"면서 "위성정당 역시 제도의 빈틈을 노리고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기형적인 제도는 없다"며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석 비중이 절반씩 할당됐어야 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개선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이주민들에 대한 오랜 관행과 인식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도 요구됐다. '다문화사회론' 저자인 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 가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관계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주민들에 대한 거리두기 관습을 깨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정책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