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글로벌 경제에 날린 펀치가 핵폭탄급이다.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의 감염병 사태 때 맞은 펀치와는 급이 다르다. 당시에는 다운 이후 곧바로 일어서며 반격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카운트 10'을 모두 채우고도 일어서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글로벌 경기가 향후 어떻게 흘러갈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재정·통화 등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도 코로나19 충격을 상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을 못 할 정도로 우려스러움을 표했다.
◇ "글로벌 경제 'V' 회복 쉽지 않아…'U자', 나아가 'L자'마저 우려" =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16일 "과거 감염병 사례에서 나타난 글로벌 경제의 일시적 충격 후 반등, 이른바 'V'자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U'자, 더 나아가 'L'자 경로마저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기가 급락한 후 몇 달 만에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모습을 'V자형 반등'이라고 말한다. 과거 1918년 스페인독감부터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 2002년 사스, 2015년 메르스까지 과거 감염병 사태 이후에는 모두 이 회복 형태를 보였다.
'U자형'은 상당히 오랫동안 바닥 상태를 이어가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모습이다. 바닥에 닿은 후에 정상 상태로 회복되는 기간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L자형은 심각하다.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이후 회복 기미 없이 저점 상태에 장시간 머무는 경기침체 형태다. 노동 시장, 자본 형성, 생산성 기능 등 경제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즉 공장이 문을 닫고 공급망이 망가지면서 생산이 중단되고 강제 무급휴직과 정리해고가 발생해 경제 주체의 대규모 피해가 지속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과거 감염병 사태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사상 초유의 글로벌 감염사태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지 두 달 남짓 만에 전 세계 140여개국에서 14만명 가까이 감염됐으며 끝내 세계보건기구(WHO)도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을 선언했다.
특히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인적·물적 이동제한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수요 위축 등 실물경제 공급·수요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 글로벌 주요국,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올인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15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기존의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P) 낮췄다. 이달 3일 0.5%P 인하에 이어 2주도 안 돼 내린 결정이다. 금리만 내린 게 아니라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해 7000억 달러(약 850조 원) 규모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기로 하는 등 대규모 양적 완화 조지도 단행했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코로나19가 커뮤니티를 훼손하고,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의 경제적 활동에 피해를 줬다"면서 "글로벌 금융 여건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중국 인민은행 역시 12.5%이던 시중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50~100bp 인하해 5500억 위안(약 76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풀었다.
유럽연합(EU)은 250억 유로(약 33조9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보건 체계와 소규모 기업, 노동 시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별로는 이탈리아가 75억 유로를 긴급 투입하기로 했으며 독일도 124억 유로 규모의 공공투자 계획을 내놨다.
일본 정부 역시 약 40억 달러를 공급하는 코로나19 긴급 대응책을 내놨으며 일본은행도 오는 18~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CP와 회사채 매입을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기구들도 잇따라 긴급 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세계은행(WB)은 12O억 달러를, 국제통화기금(IMF)은 500억 달러를 각각 코로나19 대응비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코로나19 추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경기가 V자로 갈 거다, U자로 갈 거다 예단하긴 어렵다"며 "단기적으론 방역이 최우선으로 피해 업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거시적으론 재정과 통화를 활용해 수요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는 이미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는 상황에서 국내 상황이 해소된다고 단기간에 경기가 회복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재정, 통화 등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다"며 "지금으로선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상쇄할 만큼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희망적인 전망도 없지 않았다.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중국 산업의 조업 재개율은 거의 회복됐고 조만간 실제 가동률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확진자 수의 큰 폭 감소 추이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중국 경제도 빠른 속도로 재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처장은 "한국의 경제위기 역시 항공, 여행 등 직격탄을 맞은 일부 산업의 위기, 그리고 소자본 자영업과 중하층 노동자들의 경제위기로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재정투입전략을 제시했다. 송 처장은 "한시적으로 제도를 탄력적으로 완화 운영해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과 특수고용노동자들)까지 포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임차인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소득보전과 임대료보조지원 등을 위한 재원을 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용 측면에서는 기업의 어려움으로 근로자 감소가 우려된다.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이는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재정을 중심으로 하는 노인 단기 일자리는 늘겠지만 기업의 어려움으로 청년 취업은 물론 자칫 30~50대 근로자의 자리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로서는 현 시국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만큼 기업들의 활력 제고하는 방향으로 기준 금리를 인하하고, 과감한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며 "또한 노동조합도 경제난 극복을 위해 사측에 양보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