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S&P는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고 기업들의 교역 및 수출 의존도가 높아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12일 밝혔다.
박준홍 S&P 이사는 “국내 기업 중 올해 상반기 실적 저하를 보이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신용등급 유지 여력이 약한 기업들은 등급하향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S&P가 등급을 부여하는 국내 기업의 약 23%가 부정적 등급전망을 갖고 있다.
박 이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투자와 주주환원 규모를 줄이는 등 유연한 재무 정책적 대응은 등급평정에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S&P는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으로 여행, 레저, 항공 산업을 꼽았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항공사의 노선 감축 및 운항 중단으로 지난 2월 마지막 주 국제선 여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66% 감소했다. 인천국제공항 일별 이용객도 3월 들어 연간 평균치의 약 10~20%인 약 2만 여명으로 감소해 2003년 사스(SARS) 발병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S&P는 7일 한진인터내셔널(B-,부정적 관찰대상)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했다.
코로나19 확산이 공급망 및 생산 차질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사들의 어려움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BBB+,안정적)와 기아차(BBB+,안정적)는 중국 부품사로부터 자동차 부품을 제때 공급 받지 못해 연간 판매량의 약 2%에 달하는 12만 대 수준의 차량생산이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공급 측면 차질보다 수요 측면의 영향이 이들 기업의 실적과 신용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S&P는 지적했다.
전자 업종은 자동차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었다. 삼성전자(AA-, 안정적)는 구미 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일부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공급망 차질 등이 장기화 될 경우 베트남 등에 위치한 삼성전자와 LG전자(BBB, 안정적)의 해외공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S&P는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은 전반적인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의 높은 수출 의존도를 감안할 때, 생산 차질보다는 주요 제품 및 서비스의 수요 감소가 실적 및 신용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요 감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업종으로는 정유ㆍ화학, 철강, 유통, 자동차, 전자 산업 등을 언급했다.
S&P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적부담에도 불구하고 S&P가 등급을 부여하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양호한 유동성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내 자본시장 내 유동성이 풍부하고 많은 기업이 은행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고려할 때, 대부분 기업들의 경우 차환용 자금조달 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수출기업들은 원화 약세로 인해 다소의 실적 수혜가 예상된다.
S&P는 하반기에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의 향후 확산 속도와 변곡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지만 전문가의 역학 모델에 따르면 올해 6월 전에는 정점을 지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및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S&P는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이 올해 2분기 중에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기 시작할 것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한국의 GDP 성장률은 2020년 1.1%로 하락한 후 2021년 약 3.2%로 반등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