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법ㆍ자본시장법 등의 개정에 따라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진 가운데 경제단체들이 기업들에 대한 관치(官治), 연금 사회주의 등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들과 함께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열었다고 밝혔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개회사에서 “이제 우리 기업들은 해외 헤지펀드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경영권 간섭까지 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공격을 우리 기업들이 별다른 방어수단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국민연금 설립 목적이 국민의 미래소득 보장에 있는 만큼, 정부가 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조 발제를 맡은 최광 전 보건복지부장관도 국민연금의 일탈을 지적하면서 “일부 기업의 위법 행위는 관련법을 통해 처벌하면 되는데 정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들을 제재하겠다는 발상은 기금설립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 전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칭)국민연금위원회'를 복지부에 설치해 감독 기능만 수행하게 하고 산하에 기금운용위원회를 두되, 세계 최고의 기금운용 전문가들로만 위원들을 구성하여 전문성을 높이고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을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 산하 위원회 중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집행역할을 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는 기업들에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며 "설치근거를 상위법이 아닌 시행령에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 의사결정의 한 축인 지역가입자단체에 농어업인, 자영업자, 소비자, 심지어 시민단체들까지 넣는 것도 문제"라며 "단지 위원회의 구성이 다양하다고 해서 독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이 사법적 심판대에 오르는 현상도 비판했다.
최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역할은 감독 기능에 국한하고 시민단체들도 위원회를 통한 과도한 기업경영 개입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관훈 선문대학교 법경찰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거버넌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기금의 투자ㆍ운용이나 기업경영에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정치적 판단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기금의 투자 판단 및 의결권 행사는 투자전문가에게 맡기고, 현행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들 전문가의 의사결정을 관리ㆍ감독하는 기능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사용자대표인 이상철 경총 수석위원은 "정부와 노사,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이해관계자 중심의 현행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 중심으로 시급히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GPIF, 노르웨이 GPFG, 네덜란드 ABP, 캐나다 CPP 등 세계적 연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모두 공모나 노사단체 추천을 받은 민간 투자ㆍ금융 전문가들로 구성해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수익률 극대화에 매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의 의사결정으로 국민적 신뢰를 확보했다. 만약 이해관계자 간 이익 충돌이 있더라도 한국과 같은 사회적 갈등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이 위원은 설명했다.
최성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본부장은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국내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기금운영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정치적 이유로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며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작년 말 마련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은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민연금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