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은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보다 아이디어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과 소셜커머스가 시장을 주도해왔다. 이커머스 시장이 꾸준히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기업의 영향력이 미미한 이례적인 시장이었다.
하지만 승자가 독식할 때까지 혈투를 계속하는 온라인 사업의 특성상 이커머스 시장에서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한 혈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고꾸라지면서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유통 대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온라인 사업에서 공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온라인 유통기업들도 일제히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전열을 재정비하며 전력 질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의 유통 공룡, 온라인 반격이 시작된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와 신세계가 온라인 경쟁력 강화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며 기존 이커머스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는 이달말 경기도 김포에 세번 째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네오 003)를 오픈해 증가하는 신선식품과 새벽 배송 수요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SSG닷컴의 배송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이 물류센터는 하루 최대 3만5000건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다.
SSG닷컴의 물류센터는 현재 용인(네오 001)과 김포(네오 002)에 각각 한곳씩 있다. 이중 새벽배송은 김포에서만 담당하는데 현재 커버 지역은 서울과 분당, 일산 일부로 22개구다. 이마트는 이번 네오003 센터 가동으로 새벽배송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SSG닷컴 관계자는 “이번 센터가 가동되면 새벽 배송 물량은 현재 5000여 건에서 두 배 늘어난 1만 건 이상으로 확대된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최근 예년보다 한달 빠른 인사를 통해 온라인 사업 조직을 한층 강화했다. 10월 말 단행된 정기인사에서 SSG닷컴은 상품과 SCM 운영, 플랫폼 개발 담당 임원을 승진시켜 상품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사업 전 분야에 힘을 실어줬다.
자금 지원도 든든하다. 신세계는 SSG닷컴에 2021년까지 약 1조 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SSG닷컴은 추가 물류센터 부지까지 물색하는 등 이커머스 인프라 확충에 계속 힘을 쏟고 있다.
롯데 역시 온라인 사업 강화 움직임이 거세다. 롯데는 내년 상반기 중 백화점과 마트 등 7개 유통 계열사의 온라인몰을 한 데 모은 통합 어플 ‘롯데온(ON)’을 선보이고, 2023년까지 이커머스 취급 규모를 20조 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전 작업으로 유료회원 확보도 시작했다. 롯데는 연말까지 '롯데온'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롯데의 모든 오프라인 매장에서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이 무료배송과 자체몰 할인 쿠폰으로 고객에 어필한다면 롯데는 이들이 넘보지 못하는 오프라인 혜택까지 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롯데그룹 인사에서도 온라인 사업을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판 아마존·알리바바 탄생할까=이커머스는 해외 진출 진입 장벽이 오프라인 유통채널보다 낮은 편이다. 알리바바나 아마존이 전세계를 무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해외 진출에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는 롯데와 신세계가 이커머스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 역시 국내 온라인의 빠른 성장 이외에도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0년 22조 원 수준이던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 규모는 2013년 30조원, 지난해 약 79조 원에 이어 올해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등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2013년 200조 원을 넘은 후 지난해에는 230조 원에 그치며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세 속에서도 아직 절대강자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4조 원대 매출을 기록한 쿠팡의 점유율도 6%대에 불과하다. 쿠팡은 올해 10조 매출 달성이 유력시되지만 두자릿수 점유율을 차지할 지는 미지수다. 아마존의 미국 온라인 시장 점유율은 40%대다.
업계에서는 내년 쿠팡에 도전하는 롯데와 신세계의 반격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한판 승부를 통해 시장 성장이 가속화하고 점유율 10%를 기록하는 첫 기업이 등장할지 여부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는 살아있는 생물과 비견될 만큼 변화무쌍한 시장이다. 10년 전 1위였던 G마켓이 지금 1위가 아니고 10년 전엔 없던 쿠팡이 지금 1위이듯 계속 1위로 남기 어려운 시장에서 소비 트렌드 변화를 제대로 읽는 기업만이 패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의 자본만으로, 이커머스의 IT기술만으로 시장을 장악할 수 없는 이 시장에서 내년 쿠팡과 대기업간의 경쟁이 어떻게 판가름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