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민주당 경선은 워런 상원의원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화제성에서는 전 국민 의료보험과 부유세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건 워런에게는 밀렸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워런과 비슷한 정책기조의 급진 좌파로 분류되지만 워런의 부상과 건강 이상설 등으로 과거 대선보다는 지지 열기가 식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워런은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향후 10년간 최소 6조 달러(약 7112조 원)의 증세, 민간보험과 대학의 영리 운영 금지, 셰일업체의 ‘수압 파쇄’ 공법 금지 등 파격적인 공약으로 민주당 경선 레이스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
자신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면서도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를 능가하는 급진적 정책을 밀어붙이는 워런의 모습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를 갈구하는 민주당 유권자들이 반응했다. 이에 워런은 10월 초 일부 여론조사에서 27~29% 지지율로 바이든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공약이 독(毒)이 된 것일까.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민주당 내 온건한 중도주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 미국 각종 정치여론조사 결과를 집계하는 정치분석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11월 21일~12월 1일 기준 워런의 전국 지지율은 14.0%로, 바이든(27.2%)은 물론 샌더스(16.2%)에게도 밀렸다.
블룸버그통신은 전국민 의료보험이라는 급진적 공약에 민주당 경쟁 후보의 비난이 쏟아지면서 워런이 모멘텀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런 자신도 집중된 공격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만 해도 무려 20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전국민 의료보험 재원을 충당할 세부계획을 공개하는 등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주 후 임기 3년차가 돼야 전국민 의료보험 가동에 나서겠다고 밝혀 파격적인 변화를 원했던 유권자들을 실망시켰다. 전문가들은 워런의 공약이 사실상 바이든, 샌더스와 별로 차이가 없다고 꼬집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한때 대선 출마를 포기했던 블룸버그가 워런, 샌더스에 대한 중도주의 유권자들의 우려를 배경으로 다시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또 이달 초 일주일간 TV광고비로만 3300만 달러를 쏟아 붓는 등 풍부한 자금력을 과시했다.
이런 물량공세에도 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상당하다. 블룸버그와 대척점에 있는 워런은 “블룸버그는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가 가진 거액의 돈은 필요하다”며 비꼬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급진적인 인사들이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 뉴욕 시장 선거에서 공화당 온건파로 출마한 이력이 있는 77세의 미디어 재벌이 나선 것은 자만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정이라는 견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자신의 회사가 여성을 차별해왔다는 논란도 있으며 최근 뉴욕 시장 재직 시절 경찰의 불심검문 정책과 관련해 흑인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또 대선 출마로 블룸버그통신의 보도 부문에도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 선거캠프는 최근 사주의 출마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이 편파 보도를 할 수 있다며 자신들에 대한 취재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블룸버그라는 거대 미디어 제국을 키운 자수성가 부자이자 9·11 테러 공격을 받은 뉴욕을 재건하고 기후변화와 총기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액을 기부해온 그의 실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출마 성명에서 “나는 말뿐인 사람이 아니다”라며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는 3일 하버드대학과 해리스폴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7% 지지율을 기록했다. 출마 공식 표명 이후 지지율이 2~3%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일주일 만에 지지율을 배로 높이는 저력을 과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