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과 경제분쟁을 일으켰지만 실익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일 무역적자가 1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오히려 일본이 얻은 손해가 더 컸다. 일본이 ‘불확실성’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칼을 휘둘렀지만 오히려 제 발등만 찍은 셈이다.
일본은 올해 7월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대(對)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8월 28일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9월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데 이어 같은 달 18일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개정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를 시행했다. 한일 경제분쟁이 극에 달한 것.
일본이 시작한 경제갈등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피해가 더 컸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일 수출은 24억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0.9%, 수입은 35억2000만 달러로 18.5% 감소했다. 이에 따른 대(對)일 무역 적자는 11억1000만 달러로 이는 2002년 5월 10억8000만 달러 적자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로 놓고 봐도 1~10월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163억6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6억1400만 달러보다 20.6%나 줄었다. 역대 1∼10월 기준으로 따지면 2003년 155억6600만 달러 이후 가장 적은 적자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03년 190억3700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대일 무역적자가 200억 달러를 밑돌게 된다. 역대 최고치였던 2010년 361억2000만 달러와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7월 경제분쟁이 발발한 이후 10월까지 일본의 누적 대한 수출 감소율은 -14.0%로 한국의 대일 수출 감소율 -7.0%의 두 배에 달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일본산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 부품·장비 수입을 대폭 줄인 게 주된 요인이다. 또한 일본제 불매운동으로 자동차, 의류, 주류, 전자제품 등 주요 소비재의 수입도 큰 폭으로 줄어든 영향도 컸다.
한일 양국은 이달 중순께 일본 도쿄 ‘제7차 수출관리정책대화’를 열고 수출규제 해법 마련에 나선다.
이는 우리나라로서는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하고, 일본은 양국 무역에서의 피해를 줄여야 하는 것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달 말께로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일 정상회담 등의 일정도 영향도 있다. 양국 정상이 만나기 전에 합의 내용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양국이 빨리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합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대화 목표가 수출규제 철회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번 사태가 일제시대 강제징용과 관련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측의 반발로 불거진 사항인 데다 양국의 내부 정치적 상황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 모두 이번 사태가 오래 가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대화를 통한 해결 모색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