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기를 생산하는 국내 A기업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일본의 B기업과 아세안 시장 진출을 두고 경쟁 중이다. 품질은 비슷하다. 시장 선점의 열쇠는 가격 경쟁력이다. A기업은 자신만만하다. 이미 우리나라가 아세안과 표준 협의를 끝내 국내에서 받은 시험인증서로 아세안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비자 발급이 끝난 여권을 들고 있는 셈이다. 또 아세안에서 요구하는 제조기준과 동일하게 생산된 제품이기에 별도 생산라인 변경 없이도 수출할 수 있다. B기업은 부랴부랴 한국과 아세안의 제조 표준에 맞춰 생산 라인을 변경하고, 아세안에서 시험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에 따라 생산 원가는 치솟아 버렸다. 수출 경쟁력에서 이미 시장 진출의 성패는 결정 났다.
한국과 아세안의 표준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때 심심찮게 들려올 기분 좋은 예시다.
정부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표준화 공동연구센터’ 설립에 합의하는 등 표준 협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아세안 시장 진출은 물론 시장 선점의 첫발은 표준 협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세안의 경제 규모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정부가 표준 협력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설명된다.
아세안의 역내 명목 국내총생산(GDP·추정치)은 2조9000억 달러 규모로 세계 6위의 거대 단일 시장이다. 싱가포르를 제외한 9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올해 세계 성장률 2.9%를 웃돌아 가장 활발한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 있어 아세안은 중국 다음으로 큰 교역대상이다. 한국 무역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9.7%에서 지난해 14.0%로 확대, 한국의 핵심 경제협력 파트너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이런 아세안과의 표준협력은 한·아세안 교역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표준과 품질협력이 이뤄지면 국내 생산 제품이 아세안의 관세·기술규제 제약을 받지 않고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 시험 인증을 받은 성적서가 아세안에서도 똑같이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형 제도 전수사업을 통해 한·아세안이 같은 적합성평가 시스템으로 운영되도록 하면 우리 시험인증기관이 아세안에서 시험인증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크게 유리하다. 또 한국형 계량제도를 전수하면 제품의 제조기준이 같아져 한국에서 만든 제품 그대로 아세안에 수출할 수 있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아세안의 경제 성장과 잠재력으로 볼 때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역량 강화, 기술적 협력, 인프라 지원 등 아세안과의 표준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아세안의 표준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향후 우리 기업의 수출 및 투자 진출에 유리한 표준 기반을 만드는 기초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