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훈의 독설(督說)] 국민을 위한 공무원은 없다

입력 2019-11-26 13:32 수정 2019-11-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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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중소기업부 차장

 ‘탐관오리’.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부패한 관리’다. ‘지위를 악용해 백성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일삼는 자’쯤 되겠다. 전래동화에나 나옴 직한 ‘전설’일 뿐일까. 아니다. 현대판 탐관오리는 ‘갑질 공무원’이란 이름으로 선배들의 전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최근 마치 탐관오리를 연상케 하는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의 ‘대(對)국민 갑질’을 유감없이 목격했다. 6월 서울 양천구 신정3동의 A어린이집은 구청으로부터 일방적 폐원조치를 당했다. 폐원하겠다는 사전 설명도 없었다. 40여 명의 원아들은 느닷없이 갈 곳 없는 처지가 됐다. 10년 기한 위탁기간의 절반 만에 난 사달이다. 어린이집 부지 주인의 지속적 철거요구 탓에 안정적 운영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처분에 절차 및 법적 하자 가능성이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청의 무책임한 자세라고 학부모들은 지적한다. 대책 없이 아이들을 길바닥으로 몰아내고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만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폐원결정 석 달이 지나 주무부서인 양천구청 출산보육과는 원아들이 이전할 시설 매입을 약속했다. 책임감에서가 아니었다. 학부모들이 김수영 양천구청장과의 면담을 강행하자 무마를 위해 급히 한 약속이다. 하지만 2개월 뒤 결국 양천구청은 ‘무대책’으로 나왔다. 이전할 시설을 사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수십억 원 예산이 확보됐지만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한술 더 떠 25톤 덤프트럭이 질주하는 공사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인근 어린이집이라면 자리를 주선해 볼 수 있다는 비현실적 대안을 내놨다. 노력했다는 ‘공치사’를 곁들여서다. 싫으면 학부모들이 알아서 보낼 곳을 찾으라며 ‘세심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기저귀 찬 아이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 했던가. 절박한 엄마들의 재면담 요청에 김수영 구청장은 “지난번에 ‘만나주지’ 않았느냐”며 문전박대했다. 양천구 유일 재선구청장인 그의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엄마 구청장’,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다. 관내 어디서든 본인을 ‘엄마 구청장’이라고 소개한다. 엄마들은 외면하면서 기념사진 찍는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 한 학부모는 “치적을 위해 ‘엄마’라는 이름을 더럽히고 사진 찍으러만 다니는 ‘트로피 구청장’”이라고 꼬집었다. 어떤 엄마가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을 구르는 모정을 뒤로하는 것은 물론 한겨울이 코앞인데 아이들을 길바닥으로 내몰 수 있는지 실로 궁금하다.

 양천구가 어린이집 폐원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겪은 게 처음도 아니다. 매년 유사한 일이 터지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일방적 폐원과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이전시킬 책임을 회피하는 안면몰수가 반복된다. 양천구는 매년 구립어린이집을 서울시내 최대 수준으로 확충한다며 김수영 구청장 치적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폐원 어린이집 수가 얼마인지는 숫자도 공개하지 않는다.

 노력했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변명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맞벌이 부부에게 어린아이를 맡길 곳은 생계만큼 중요한 문제다. 학부모와의 상의를 선행했어야 하는 것이 첫째요. 대책 마련 뒤 저질렀어야 하는 게 둘째요. 다 못했다면 뒷감당이라도 충실해야 하는 것이 셋째다. 그게 세비로 녹을 먹는 공무원이 가져야 할 공복(公僕)의 자세다. 하지만 무엇을 했는가? 한 TV드라마의 주인공이 비리공무원에게 일갈한 대사가 떠오른다. “남의 돈으로 술 먹고 밥 먹고 옷 사 입으면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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