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주장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중국은 국가와 기업이 전략적으로 양자기술에 본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양자정보과학 국가전략’을 수립해 2019년부터 5년간 최대 13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연구와 인재양성의 거점도 전국 10곳에 구축한다고 한다. 중국은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를 중대 프로젝트로 지정해 10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연구거점도 2020년에 완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알리바바 등 IT 대기업들도 정부의 연구기관과 양자컴퓨터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0억 유러(약 1조2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특히 독일과 영국, 네덜란드는 독자적 투자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일본도 다급해졌다. 미국과 중국이 중점 투자에 나서자 바로 대규모 투자에 나설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6월 내놓은 ‘통합 이노베이션 전략 2019’에서 특히 대책을 강화해야 할 3대 기술 분야로 AI·생물공학과 함께 양자기술을 정했다. 양자기술의 활용을 통해 일본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건강ㆍ의료 기술의 향상, 국가와 국민의 안전·안심 확보 등에서 비약적 혁신을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 문서는 ‘양자기술 이노베이션 전략’을 수립하고, 산업계와 협력해 국가적 전략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양자 컴퓨터 등 양자기술의 연구개발 전략을 주축으로 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이 로드맵은 27일 전문가회의에서 확정된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양자기술이 모노쯔쿠리(장인형 제조업)와 금융서비스 등 많은 분야에 이노베이션을 일으킬 것으로 보고, 산학관 협력 아래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 경제신문에 따르면 이 로드맵은 약 20년 후에 폭넓게 계산에 이용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양자컴퓨터에서 계산하는 기본적 소자(양자비트)의 수가 100개인 기종을 10년 내에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게이트 방식’이라 불리는 범용형에서 미국의 구글과 IBM이 이미 약 50양자비트의 장치를 시제품으로 내놓고 있다.
일본은 이를 제치고 2039년에 응용 가능한 본격적 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전망한다.
우리나라는 한참 뒤떨어져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자컴퓨터를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정의된 제4차 산업혁명은 결국 ‘데이터 이코노미’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AI,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바이오 등의 첨단 기술은 ‘데이터 이코노미’로 수렴된다. 양자컴퓨터 기술은 이러한 ‘데이터 이코노미’의 혁신을 가져오는 신흥 기술이다. IT 강국인 한국이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가 바로 양자컴퓨터 기술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소재(재료) 혁명이 선도한다, 예컨대 IoT를 활용할 때 필요한 다양한, 대량의 소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자컴퓨팅이 실현되면 신소재 개발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현행 슈퍼컴퓨터의 능력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한국도 정부 주도 아래 산학연이 연계해 양자컴퓨터 개발에 한시바삐 나서야 한다. 이 분야의 선두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7월 일본의 소재 수출제재 압력이 시작된 이후 정부는 ‘소부장’ 자립화에 전력투구해왔다. 소부장 전략에서도 데이터 기반 경제, 데이터 이코노미는 유효하다. 소부장 전략을 한 차원 높여 양자컴퓨터를 그 안에 넣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양자기술을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 기술이라는 판단 아래 AI에 버금가는 양자기술 개발 전략을 수립해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