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빅뱅’을 몰고 올 것이란 기대감을 안고 지난달 말 시범 운영에 들어간 오픈뱅킹이 첫발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집토끼(고객)’를 뺏기지 않으려는 은행들의 불협화음 때문이다.
◇은행들, 합의 어기고 고객정보 ‘꽁꽁’ =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주요 은행 가운데 한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은행의 앱에서 타행의 예·적금 정보가 조회되지 않고 있다.
오픈뱅킹이란 은행 결제망을 외부에 개방하는 제도다. 금융 앱 하나만 다운로드하면 여러 은행의 금융서비스를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다. 예전처럼 은행 앱을 하나하나 설치하지 않아도 A 은행 앱에 접속해 B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을 C 은행 계좌에 이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은행권은 오픈뱅킹을 시행하기에 앞서 입출금 계좌뿐만 아니라 예·적금 계좌와 펀드계좌 정보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출금은 입출금 계좌에서만 가능하게 하고 예·적금 계좌와 펀드 계좌는 잔액 조회만 되도록 했다.
오픈뱅킹 시행일 이후 주요 은행의 앱에서 타 은행의 입출금 계좌는 곧바로 조회된다. 하지만 예·적금은 특정 은행의 정보만 조회될 뿐 나머지 은행은 오류 메시지가 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입출금 계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실명 확인에 대한 규약이 없다”며 “예·적금 계좌 인증방식이 은행마다 다른데, 타행 계좌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이 방식이 달라 스크래핑(자동 정보 추출·제공)이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정 은행이 예·적금 계좌조회 서비스를 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은행들이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는 얘기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끼리 가격경쟁만 하는 치킨게임으로 흐를지, 새로운 플레이어들에게 은행이 가진 고객과 정보만 내어주고 말지, 아니면 국내 은행이 새롭게 탈바꿈할 기회로 활용할지는 얼마 후 판가름 날 것”이라며 “고객 중심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벌써 이체오류 잡음 = 일부 은행에서는 이체 시 오류도 발생했다. 이체를 출금과 입금 거래로 구분한 오픈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현재는 출금계좌에서 돈을 출금해 입금계좌로 돈을 넣는 과정을 하나로 본다. 만약, 입금계좌가 ‘사고 계좌’로 입금이 안 되는 상황이면 입금이 취소되고 그 돈이 원래 출금계좌로 자동으로 환급된다.
하지만 API 방식에서는 출금과 입금이 별도 과정이다. 입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원래 은행으로 돈이 돌아가지 않고 출금 거래를 새롭게 정정해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운영시스템을 4TB(테라바이트)에서 60TB로 증설하고, 이상 거래탐지 시스템(FDS)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며 “12월 정식 서비스까지 미비한 점들을 각 금융사가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