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폭스바겐그룹 ‘마틴 빈터콘’ 회장은 ‘글로벌 1위’ 전략을 밝혔다.
9000만 대 규모의 글로벌 차 시장에서 연간 100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본 토요타는 물론 미국 GM까지 제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질세라 토요타와 GM 역시 대대적인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다. 토요타는 경영난에 빠진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하나둘 인수하기 시작했다. GM 역시 ‘쉐보레’ 브랜드를 앞세워 폭스바겐의 안방인 유럽을 겨냥한 역공을 노렸다. 일찌감치 손에 넣었던 한국지엠(당시 GM대우)의 군산공장을 활용하겠다는 전략도 밝혔다. 1990년대 대우자동차가 유럽 곳곳에 심어놓은 판매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본격적인 양적 성장을 추진하던 때였다.
이들과 맞선 폭스바겐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인수합병(M&A)을 통해 꾸준히 몸집을 키웠다. 1964년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를 인수한 이후, 1986년 동유럽 저가 소형차 ‘세아트’를 손에 넣었다. 1994년에는 체코 소형차 브랜드 ‘스코다’까지 거머쥐었다.
돈이 차고 넘쳤던 폭스바겐은 1998년에 초호화 브랜드 3곳을 동시에 인수하며 야심을 내보였다. 대표적인 회사가 롤스로이스와 쌍벽을 이뤘던 초호화 브랜드 벤틀리, 슈퍼카 브랜드 부가티와 람보르기니 등이었다.
이후에도 폭스바겐의 인수합병 전략은 꾸준히 ‘모터 컴퍼니’에 쏠렸다. 그 범위도 모터사이클부터 대형 상용차까지 확대했다. 폭스바겐은 2008년에 스웨덴 트럭 브랜드 스카니아도 인수했다.
효과를 톡톡히 봤던 폭스바겐은 2011년에는 마침내 만(MAN) 트럭을, 이듬해 2012년에는 이탈리아 모터사이클 브랜드 ‘두카티’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폭스바겐은 M&A 때마다 ‘엔진이 달린 탈 것’에 집중했다.
반면 현대차의 인수합병 전략은 폭스바겐의 그것과 정반대였다.
1999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이후 현대차는 단 한 번도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양적 성장을 추진하되 M&A 대신 오롯이 현대차와 기아차 두 브랜드만 앞세워 생산설비를 확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기아차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출범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800㏄ 경차(기아차 모닝)부터 5000㏄ 대형 세단(현대차 에쿠스)을 만드는 유일한 자동차 회사였다.
그 사이 현대차의 M&A는 현대제철과 현대건설 등 비(非)자동차 분야에 집중됐다.
애스턴마틴과 볼보 등이 새 주인을 찾을 때도 현대차는 꾸준히 후보군에 올랐지만 단 한 번도 곳간을 열지 않았다.
사실상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궈낸 ‘현대그룹’의 재건에 매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