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어디 갔냐. 안전하다고 했으니 안전하게 돌려 달라!”
확성기를 거치지 않은 맨 목소리가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을 뚫었다. 한 명의 외침에 다른 사람들도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전혀 원금 손실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따라 외쳤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ㆍDLS)에 투자한 사람들. 그들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묻어났다.
10일 오후 2시 DLFㆍDLS 상품에 투자했다가 원금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구성한 DLFㆍDLS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피해자비대위)와 금융정의연대,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DLF상품 사기 판매한 우리은행장 사기죄 혐의 고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리은행이 상품의 위험성을 속여 투자자들을 오도했다고 주장했다. 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10년물 DLF는 원금의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초고위험상품’인데, 마치 ‘안전자산’인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은행의 설명처럼 고수익 상품도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인 이대순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는 금융 상품이 판매됐다”라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하이리스크, 로우리턴(high risk, low return)' 성격의 상품이라는 것.
그는 "원금은 모두 손실을 볼 수 있는데, 얻는 이익은 연 금리로 환산할 때 3.5~4%에 불과하다"면서 "여기에 6개월 만기 상품이어서 수수료 등을 제하면 2%도 안 된다”라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었다.
이 변호사는 특히 ‘불완전판매’를 문제 삼았다. '초고위험상품’인 데다가, 복잡한 금융상품을 이해하기 어려운 95세 고령자와 치매 환자에게 판매한 것은 잘못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은행이 ‘원금 손실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투자자들 유인한 것은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러한 행위는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며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수사가 개시되지 않아 고발장을 접수한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투자자의 책임’에 대해선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상품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팔았다면 이는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 이 경우, 금융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어떤 사람에게 팔았는지도 중요하고, 투자자의 금융 접근도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고령자, 치매 환자에게 복잡한 금융상품을 설명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고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투자자가 투자 전에 상품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은행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해서 투자자의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고수익이라는 말만 듣고 전 재산을 투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투자"라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투자자 책임'을 강조했다. 은 위원장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또 "투자하는 분들도 안전한지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생각 안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계약 무효 등 개별 사안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일단 조사 과정에 성실히 임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후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