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효과’는 경제지표가 악화할 때마다 정부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쓰는 단어다. 기저효과는 기준시점의 지표가 이례적으로 위축되거나 부풀려져 현시점의 상황을 왜곡하는 현상이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투자가 급감한 원인은 기저효과다. 반대로 경제지표가 개선되면 정책효과다. 이 같이 ‘편리한 해석’도 없다. 실체적 위기나 정책적 실책을 들춰낼 필요가 없다. 지표 등락에 맞춰 기저효과와 정책효과 중 하나를 고르면 그만이다.
3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0.4% 하락했고 수출액은 11.7% 감소했다. 정부는 기저효과를 내세웠다. 지난해 농산물 가격은 폭염으로 급등했고, 반도체 D램 가격은 최고점을 찍었다는 게 근거다. 하지만 고교 무상정책(-0.17%포인트(P))과 농산물 기저효과(-0.16%P)를 감안해도 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0.07%)다. 수출액은 반도체뿐 아니라 석유제품(-18.8%), 석유화학(-17.6%), 디스플레이(-17.1%) 등 주력품목이 모두 부진했다. 배경을 한두 가지로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설비투자가 1997년 이후 최장기간 감소를 기록하고, 취업자 증가 폭이 3000명으로 축소됐을 때에도 핑계는 있었다. 반도체설비 증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실업자 중 상당수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전후에 취업한 40대로 고용여건이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경제지표가 악화할 때마다 정부는 과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이런 아전인수격 지표 해석을 놓고 기재부 내에서도 자성론이 나온다. 여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문제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물가만 보더라도 고령화 추세 등을 고려하면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앞으로도 저물가 혹은 마이너스 물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처럼 포장하는 데 급급하다가 나중에 정말 큰 문제가 생기면 그땐 정부가 기존에 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정부의 시그널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길게 봤을 땐 모든 문제를 투명하게 오픈해 진지하게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