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의 자금이 풀리는 데는 확실한 비전과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인 만큼 더 효율적인 자금 지원 방향과 투자의 선별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아무 가능성이 없는 벤처 활동 지원에 너무 많은 정부 자금이 낭비되었고, 이제는 조금 더 확실한 목표를 설정해 보다 체계적인 배분과 회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우려는 정부의 벤처 육성 목표가 너무 단순한 정량적 지표에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몇 년까지 몇 개의 유니콘(자산가치가 1조 원 넘는 벤처)을 만들겠다는 식의 목표 설정이다. 이 같은 목표 설정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도대체 어떤 셈으로 계산해 나온 숫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벤처 창업과 육성의 변수, 그리고 아직 이렇다 할 유니콘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 부족과 풍족에 달려 있다는 논리이다.
아이디어로 시작한 벤처가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것은 시장이 결정한다. 벤처가 제시하는 솔루션이 가치 있고, 이를 원하는 마켓이 충분히 크고, 시장 성장과 제품 확장이 가능하냐에 달려 있다. 더불어 가깝고 먼 미래의 혁신 비전, 기업 의식, 문화, 성장 동력, 리더십 등 경영과 운영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필자의 관찰로는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거나 입증한 벤처에 투자하고자 하는 민간 투자 자금은 충분한 듯하다.
벤처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유니콘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자금보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자주 지목되는 예로 공유숙박, 공유차량 모델이 거의 불법인 상황을 든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예는 그리 힘 있는 논리가 되지 못한다. 우버가 시장에 나온 지 올해로 10년째, 에어비앤비는 11년째이다. 이제 공유숙박, 공유차량은 혁신적 벤처 아이디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아 유니콘이 나오지 못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정부 규제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외국은 자국 기업의 보호를 위해 타국 기업을 규제하는데, 우리 상황은 자국 기업보다 해외 기업에 특혜가 더 있다는 목소리도 종종 들린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기업들도 벤처로 시작하였으나 이제는 대기업이지 더 이상은 벤처나 유니콘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 기업이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규제가 과연 벤처가 유니콘으로 크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규제인지는 선별해 짚어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우려와 더불어 나오는 주장이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이다. 차등의결권은 1주당 1의결권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이 부여되는 주식을 뜻한다. 즉 차등의결권을 통해 적은 자본으로 경영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이를 풀어야 할 규제로 주장하고 있는 논리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 세계적 기업, 영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이 이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차등의결권이 있어서 유니콘이 된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제시한 혁신적 서비스가 마켓을 창출하고 훌륭하게 성장을 이끌어낸 것이다. 즉,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벤처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차등의결권을 활용하는 것을 바탕으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논리이다.
정부가 어찌 도와야 어찌 성공한다, 무엇 때문에 어렵고 무엇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고 제안도 많다. 이제 이런 의견이나 제안에도 좀 더 분석적이고 검증을 토대로 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