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고 청와대는 정당한 정부 비판조차 친일로 매도할 뿐 국민과 기업에 도움이 되는 외교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앞길이 캄캄하다. 청와대는 쫄지 말고 경제전쟁에 당당히 맞서자고 한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일본의 산업을 추월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경제와 외교의 기초를 모른 채 허세 부리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불안하다. 삼성과 현대가 일본을 따라잡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우리가 일본의 기초과학과 소재기술을 추격하는 데에는 또다시 반세기 이상 걸린다고 한다. 해외기술을 구매하거나 관련 해외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텐데, 항일과 애국을 외치면서 무리하게 국산화만 고집할 경우 국내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데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이제라도 청와대는 대응책 수립에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최대한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공약을 추진한다고 고집불통의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2년으로 충분하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에 대해 많은 반대 의견들이 있었지만 모두 묵살하고, 2년이 지나는 사이 수많은 동네 영세 자영업자들은 급전직하의 처지가 되었다. 정부는 이제까지의 경제실정을 이전 보수정권 탓으로 돌렸는데, 앞으로도 일본과 아베 탓만 하고 항일과 친일로 국민을 양분하며 계속 일방통행하려 든다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집권자가 국민에게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시위에서 강조된 것이 헌법상 주권이 국민에 있다는 것이다. 주권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기본권이다. 집권자가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굴욕외교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한일협정을 체결해 중화학공업의 기초를 마련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식민제국의 문화를 수입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하고 30억 달러의 차관을 받아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고 역사인식의 잘못을 훈계만 한다고 외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국과 주고받는 타협적이고 실용적인 외교를 하는 것이 집권자의 헌법상 의무일 것이다.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은 일본이 한국의 적국(敵國)이 될 수도 있다는 안보전략상의 수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미국과 일본의 안보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재산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 영공을 침범하면서까지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다. 한반도 주변 안보동맹 관계가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고도로 계획된 군사작전의 일부이다.
일본 제품 불매에 이어 “도쿄올림픽에 불참하자”는 감정적이고 강경한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난 수천년 그리고 앞으로도 이웃하며 살아야 할 한국과 일본이 가야 할 길은 아니다. 갈등의 원인이 된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해 동북아 안보지형의 한 축을 이루는 새로운 한일 관계를 구조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항일과 친일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경제적 관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