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 없이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무모한 자'가 여기 있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이투데이 사옥에서 만난 이준휘(47) 씨는 "등산복 없이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산에 올라갔던 기억 있지 않은가"라면서 "장비 걱정하지 말고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라"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 예찬론자답다.
그렇게 시작한 동해안 7번 국도 자전거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무작정 경포대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에 방문했다는 이 작가. "아저씨한테 '자전거 두 대만 파세요' 해서 중고 자전거 두 대를 받았어요. 브레이크하고 타이어만 달린 자전거였죠. 가다가 힘들면 텐트 치고 자고, 그 앞에서 먹고,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산 있으면 세워두고 올라갔다 오고 하는 거죠."
그 이후로 유럽 배낭여행도 해보고, 호텔에서도 자보고, 제주도 여행, 신혼여행 안 해본 여행이 없지만, '2만 원짜리 자전거'와 함께 한 여행보다 감동을 주는 여행은 없었다고 한다. 2만 원짜리 자전거 여행을 함께해준 친구와는 운명이었을까. 결혼도 하고 직장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30대 중반쯤 이 작가에게는 공백기가 찾아온다. 자전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최적의 공백기였다.
"이직 생각으로 공백기가 생겼는데, 그 친구도 공백이 생긴 거예요. '한 번 더 할래?' 이렇게 된 거죠. 지난번에는 동해안 타고 내려갔으니 이번에는 서해안을 타고 내려가 보기로 했어요. 이번에는 자전거도 좋은 거로 준비하자고 했죠. 신문 구독하면 자전거 주던 시절이었는데요. 쇠로 된 중국산 접이식 자전거를 준다고 하더라고요? 자전거가 업그레드 됐어요. 10단 자전거인데 2단밖에 안 먹는 '싸구려'였지만, 기어라도 있는 게 어디에요. 어깨에 배낭 메고 타는 것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만 원 주고 짐받이도 달았습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내려가 해남을 찍고, 완도에서 배 타고 제주도를 가는 일정이었다. 딱 보름 걸렸다.
- 여행을 시작하기 전 학교 강의도 하시고 IT 회사에도 다닌 이력이 있네요. 어떻게 여행 작가를 하게 된 건가요?
"IT 회사에는 15년 이상 있었어요. 겸임으로 강의는 5년 정도 나갔고요. 누구나 직장 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곤 하잖아요. 다니기 싫을 때도 잦고, 다른 거 해보고 싶고요. 근데 40대에 직장을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제가 있던 분야 관련 중소기업을 창업하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자영업을 하는 것 정도? 직장 생활하는 내내 고민했어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수없이 생각했어요. 그러다 알았어요. 저는 IT 쪽에 있을 때도 신규 사업 모델링 해서 구현하는 쪽 일을 했는데요,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게 적성에 맞더라고요. 루틴한 업무는 관심 없었고요. 새로운 경험이 좋았어요. 항상."
- 지금의 정체성은 여행 작가로 규정지어도 되는 건가요?
"네, '여행 작가'예요. 자전거 책을 많이 쓰긴 했는데, 자전거만 쓰진 않아요. 자전거, 캠핑, 술, 꽃, 섬까지 다 다뤄요.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이 일을 하기 전에도 여행을 엄청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제 성향 자체가 편하게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안 가본 곳을 발굴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 첫 책은 '자전거 여행 바이블'. 어떻게 쓰게 된 건가요?
"아들이 두 명 있어요.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전거 타는 걸 훈련해서 아내까지 네 명이 국토 종주를 떠났어요. 서울에서 출발해서 부산까지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야생에 던져진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가족을 다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타이어가 펑크 나기도 하고, 밥 먹을 곳을 못 찾기도 하고, 잠잘 곳도 없을 때도 있었어요. 참 신기한 건요, 매일매일 누군가 도와줬어요. 트럭에 자전거를 실어주고,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라고 하시는 분, 밥을 주시는 분들…. 충격이었어요. 나와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도움을 준단 말이야? 그 여행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인심과 인정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지난 삶도 되돌아봤고요."
- 책을 펼치고, 꼼꼼하게 정리됐다는 느낌을 가장 먼저 받았어요.
"학부는 공대고, 대학원은 경영입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멀다'가 아니라 '몇 km 거리인가'로 정리해야 하거든요. '어렵다' 보다 '몇 점'으로 써야 하고요. 캠핑이나 자전거는 준비할 게 정말 많아요. 어떻게 가고, 대중교통은 무엇을 이용해야 하는지, 코스는 어떤지 등등이요. 정보는 정확하게, 사진은 말랑말랑하게 쓰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 초보자들이 가기 좋은 국내 자전거 코스는 어디인가요?
"이런 질문 받으면 가장 먼저 '남한강 자전거길'이라고 답합니다. 팔당에서 시작해서 양수리까지인데, 20km 정도밖에 안 돼요. 초보자는 주로 한강에서 맴돌아요. 무서워서요. 길이 어디서 끝나는지 몰라서 익숙한 데를 가게 되는데, '자전거 여행'이라는 느낌을 받으려면 서울을 벗어나야겠죠? 폐철로를 자전거길로 만들었는데요, 그 터널로 들어가면 어두워요. 그 어두운 터널을 나오면 경관이 환해지는데, 반전되는 맛이 있죠."
- 용기가 생기는데요?
"자전거는 중요하지 않아요. 'QR 레버'라고 앞바퀴를 돌려서 쑥 뺄 수 있는 자전거면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어요. 1000만 원짜리 자전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행을 하겠다는 도전의식이 중요합니다. 자전거는 도구예요. 자전거 여행은 '기승전결'이 있어요. 차로 이동해서 눈 감고 뜨면 장소에 도착하는 식의 여행은 '기승'이 없잖아요. 도착과 동시에 '전결'이에요. 자전거 여행은 속살을 파고드는 여행이거든요. 사라진 줄 알았던 '인심'을 만날 수 있어요. '어이, 막걸리 한 잔 하고 가', '토마토 하나 먹어' 등이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남아요. 이상한 길로 들어서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호주처럼 국토가 광활해서 길 한 번 잘못 들었다고 조난하는 나라가 아니잖아요. 길 잘못 들어가면 돌아 나오면 되고, 스마트폰으로 지도 찾으면 되고, 안 되면 콜택시 부르면 돼요.(웃음)"
- '인생술집'을 쓰면서 힘든 건 없었나요? '협찬 제로'로 썼다고 했잖아요. 혼자만 알고 싶은 술집을 공유해야 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웠을 거 같은데요.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즐겨야 제맛 아니겠어요? 비 내릴 때 막걸리 먹고 싶으면 삼각지에 있는 포장마차에 가서 마셔야 하고, 꼬막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을 땐 반포에 있는 포장마차에 가야 하고, 정말 공유하고 싶은 게 많아요. 포장마차 이모들도 가만히 보면 주특기가 있거든요. 아, 힘든 것도 하나 있었어요. 사진이 잘 안 나오던데요. 음식 사진만 찍자니 심심하고."
- 맛과 궁합 좋은 술과 안주 추천해주세요.
"스테이크와 버번위스키 추천할게요. 육즙 진득한 미디엄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와 옥수수로 만들어서 역시 진득하면서 단맛이 도는 버번위스키는 '강 대 강'으로 어울려요. 굉장히 인상적인 페어링입니다. 스테이크 먹을 때 주로 와인을 많이 마시지만, 버번위스키가 빠지면 섭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