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했고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작가 모지현의 ‘한국 현대사 100년 100개의 기억’은 3·1운동부터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이 중요하다. 오늘날 국사학계는 워낙 민족 중심의 역사 해석이 주류이기 때문에 양식 있는 사람들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책의 역사 해석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우리 역사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소작제가 사라지다’라는 제목의 농지개혁(1950~1957)은 작가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광복 당시 한국 전체 농민 84%가 소작농이었으며 농토의 63%가 소작지로 농민 대부분이 지주의 농사를 대신 짓고 있었다. 많은 논란과 밀고 당기기가 계속된 끝에 대한민국 정부는 3정보(9000평) 이상의 농지를 지주로부터 구입해서 소작농에게 파는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을 실시한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신생 독립국의 앞날을 비추는 서광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계에서는 이 같은 눈부신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다. 작가는 농지개혁의 의의에 대해 말한다.
“한국전쟁 전에 농지개혁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토지의 무상분배를 선전하는 북한 점령군에 대해 남한의 농민들은 적극적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면 전쟁은 북한이 승리하며 조기에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너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역사책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토지개혁이란 이름으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기치를 내걸었던 북한판 농지개혁은 현대판 노예제도를 만들기 위한 제도개혁이었다. 엉터리 개혁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북한 주민들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저자 역시 현재의 분위기에 지배당하는 듯한 서술을 한 부분을 만나는 일도 있다. ‘4·3항쟁’이란 용어 앞에는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구나!’라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4·3사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항쟁’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그 사건은 미화될 수밖에 없다. 선후를 따지자면 4·3사건은 남로당의 사주에 의해 신생 독립국가에 반기를 든 사건이다. 그러나 근래 우리 사회는 인과관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주장들이 목소리를 드높이는 시대가 되었다. 하기야 좌익의 선봉장 격인 김원봉에게조차 서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로당 활동을 했던 기록이 명백한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임명하는 세상이 됐으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시각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판이하게 다른 설명을 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비교적 긍정적인 해석을 더한다. “남북정상은 10·4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고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등 8개 항목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그런 호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런 회담들은 전체주의자들의 핵 개발을 완성하는 도구와 수단으로 철저하게 악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경제성장을 해도 민주화를 해도 그에 대한 위협 명문이 북한으로부터의 공격이 되지 않기를”이라는 약간의 걱정을 더한다. 전체주의자들은 항상 평화를 이용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한반도 지배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공병호연구소장